굿모닝/ 문인수

어느날 저녁 퇴근해오는 아내더러 느닷없이 굿모닝! 그랬다. 아내가 웬 무식? 그랬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후 매일 저녁 굿모닝. 그랬다. 그러고 싶었다. 이제 아침이고 대낮이고 저녁이고 밤중이고 뭐고 수년째 굿모닝, 그런다. (중략) 나의 애완 개그, ‘굿모닝’도 훈련되고 진화하는 것 같다. 말이 너무 많아서 복잡하고 민망하고 시끄러운 경우도 종종 있다. 엑기스, 혹은 통폐합이라는 게 참 편리하고 영양가도 높구나 싶다. 종합비타민 같다. 일체형 가전제품처럼 다기능으로 다 통한다. 아내도 요즘 내게 굿모닝, 그런다. 나도 웃으며 웬 무식? 그런다. 지난 시절은 전부 호미자루처럼, 노루꼬리처럼 짤막짤막했다. 바로 지금 눈앞의 당신, 나는 자주 굿모닝! 그런다.

- 시집『배꼽』(창비, 2008)

...............................................................

‘굿모닝’ 하니까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로빈윌리엄스 주연의 ‘굿모닝 베트남’이다. 그 영화에서 화면이 전환될 때마다 흘러나온 노래 ‘I feel good’ 까지. “굿모닝”은 영국이란 나라가 워낙 일기 불순하여 좋은 아침을 바라는 뜻에서 비롯된 인사말이란 것쯤은 다들 아는 사실이다. 중국의 ‘니하오마’, 무슬림의 ‘앗살람알라이쿰’ 이스라엘의 히브리어 인사말인 ‘샬롬’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인사는 좋은 하루와 무사함과 평화의 하루를 염원하는 뜻이 내포되었다. 세상살이에서 우선적으로 바라는 평범한 하루치의 소망이다.

시인이 낮에도 ‘굿모닝’ 밤에도 ‘굿모닝’ 주구장창 이 ‘굿모닝’을 아내에게 속삭이는 데는 이유가 없지 않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인사라면 ‘한참을 생각해 보겠지만’ 아무리 억대의 상금을 벌어들인 전업시인의 신분이라 할지라도 교사(지금은 정년퇴직했지만)인 아내에겐 무조건 이 ‘애완 개그’ 하나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었으리라. 오랜 기간 가정 경제의 주역은 아내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굿모닝’은 세계 모든 인사의 대표성을 띄며,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수고했다 보고 싶었다 축하한다’의 ‘통폐합’이다.

그리고 매일 머리를 극적이지 않아도 되었다. 이러한 인사말은 ‘말이 너무 많아서 복잡하고 민망하고 시끄러운’ 경우를 피해갈 수 있어 좋고, 전용으로 쓰다보면 계면쩍음도 희석되고 만다. 그래서 ‘굿모닝’은 ‘엑기스’며 ‘참 편리하고 영양가 높은 종합비타민’이고 ‘일체형 가전제품처럼 다기능으로 통’하는 그야말로 특급 인사말이다. 그 덕분에 ‘지난 시절은 전부 호미자루처럼’ 짤막짤막하게 안녕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동안 보지 못했던 문인수 시인을 며칠 전 뵈었다. 정말 다행히도 전보다 건강이 좋아보였다.

파킨슨병의 경우 나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희망적이다. 매일 동네공원까지 걸어가서 간단한 근력운동을 꾸준히 한 탓이다. 원래 몸은 자그마해도 다부졌고 악력도 센 편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집으로 오는 운동도우미의 도움도 컸다. 나머지는 아내와 함께이다. 정신도 초롱초롱 건재하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시를 쓰지 못하고, 지금은 시의 길을 좀 잃은 듯하다. 아들이 사서 걸어준 큼지막한 벽TV를 시청하는 것이 유일한 취미로 보이지만 부쳐오는 책들을 조금씩은 읽는다. 세상 돌아가는 걱정도 전과 다름없다. 아무튼 이 나라의 정치는 단 하루도 ‘굿모닝’인 날이 없지만 문인수 시인은 굿모닝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