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봉/논설위원

1991년 3월14일 오후 10시께 경북 구미시 구포동에 위치한 두산전자가 15일 오전 6시까지 30t의 페놀 원액을 낙동강 지류인 옥계천에 흘려보냈다.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이다.

수돗물에서 악취가 진동했다. 대구시민들의 신고가 빗발쳤다. 두산전자는 90년부터 페놀이 다량 함유된 악성 폐수 325t을 옥계천에 무단 방류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분노한 시민들이 두산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국회가 진상조사에 나섰다. 관련 공무원들이 무더기 구속되고 징계받았다.

그런데 당시 환경처는 수출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24일 만에 두산전자의 조업 재개를 허용했다. 다시 보름 만에 페놀 원액 2t이 유출됐다. 두산그룹 회장이 물러나고 환경처장관이 경질됐다. 대구시민들은 두산 측에 물질적 정신적 피해 170억100만 원(1만3천475건)의 배상을 청구했다. 하지만 일부 금액만 배상받았다.

페놀 사건은 국내 최대의 환경 사건이다. 우리에게 마시는 물의 소중함과 환경문제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이를 계기로 환경 관련 법이 대폭 강화됐다. 정부는 상수원 수질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후 각종 주요 환경 사건이 발생하기만 하면 되풀이하는 방식이 됐다.

-포항제철소와 석포제련소 조업정지 의미 커

경북도는 최근 포스코 포항제철소와 봉화군의 영풍 석포제련소에 대해 각각 10일과 120일의 사전 조업 정지 처분을 내렸다. 포스코는 검찰에 고발까지 당했다.

포항제철소의 4개 고로 중 제2고로에 붙은 브리더 장치에서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한 혐의다. 포항제철소에 대한 지자체의 조업정지 처분은 처음으로, 이례적이랄 수 있다.

브리더는 가스 안전 배출 밸브다. 포항제철소 측이 고로 정비를 하면서 버튼을 이용해 수동으로 브리더를 열었고, 이 과정에서 대기오염 물질이 배출됐다는 것이다.

포스코 측은 "브리더를 개방하지 않고 고로 수리를 하면, 고로 내 압력 유지 문제로 폭발 위험이 있다. 대형사고를 예방하는 행위였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포스코 측은 "제2고로가 10일간 가동 중단되면 고로 안 쇳물이 굳어 15년에 한 번씩 6개월이 걸리는 고로 개수 작업을 해야만 고로가 다시 정상 가동될 수 있다"고 했다. 피해가 너무 크니 상황을 양해해 달라는 의미다.

120일의 사전 조업 정지 처분을 받은 영풍 석포제련소는 경북도에 청문을 요청하는 의견서를 제출한 상태다. 경북도는 앞서 영풍 석포제련소가 물환경보전법을 위반했다며 조업 정지 처분을 내렸다.

경북도는 아연 등을 생산하면서 중금속 물질이 섞인 공장 폐수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조업 정지 처분을 내렸다고 했다.

이에 영풍 제련소 측은 낙동강에 폐수가 흘러 들어가지 않았다며 “120일 조업 정지가 확정된다면 공장을 재가동하기까지 1년 이상 휴업해야 한다”고 억울해하고 있다.

영풍제련소는 아연 제련, 합금 제조 공장이다. 1970년 설립됐다. 국내 아연 유통량의 34%를 차지하는 우리나라 최대 생산업체다. 중금속 폐수 배출로 2014년부터 국정감사에 단골로 등장하고 있다. 지역 환경단체들은 이전과 폐쇄를 촉구하고 있다.

-산업 비중 큰 기업도 일벌백계 다스려야

경북도가 조업정지 처분을 내린 포항제철소와 석포제련소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기업이 우리나라의 산업 분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또한 조업 중단 시 받는 기업의 피해도 상당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동안 환경문제를 이런 경제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다 보니 오염 폐해가 쉽게 근절되지 않았다.

보전과 개발의 이익이 상충할 때마다 개발에 손을 들어주다 보니 영풍 석포제련소 같이 50년 가까이 낙동강 1천300리 주민들의 젖줄에 중금속을 뿌려대는 기업이 유지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페놀 사건에서도 경험했다. 그 대가는 엄청났다.

그동안 우리가 받은 환경오염의 피해만 해도 계산이 어려울 정도다. 자손들에게까지 물려 줄 수는 없다.

개발시대의 경제 논리에 더 이상 기대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국민 건강과 안전이 우선이다. 경북도가 이번에 속 시원한 처분을 내렸다. 포스코도 기업 윤리를 더욱 철저히 챙겨라. 영풍 석포제련소는 더 큰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문을 닫아라.



홍석봉 기자 dgho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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