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일반

신선이 내려와 노닐었다는 절경, 자연이 화공되어 그린 한 폭의 ‘진경산수화’일까

<9> 예천 선몽대 일원

명승 제19호로 지정된 ‘예천 선몽대 일원’은 솔숲과 내성천의 흐름, 백사장 그리고 단애 위의 옛 건물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정경을 보여주고 있다.
맑은 물에 의해 생겨난 긴 모래톱이 수려한 풍경과 함께 이어진다.

내성천은 소백산맥의 남쪽 기슭 봉화군에서 발원해 예천분지를 거쳐 낙동강 상류로 흘러든다. 예천의 내성천변에는 뛰어난 경관 덕에 유서 깊은 문화유적도 많다.

‘예천 선몽대 일원’은 2006년 국가지정 문화재인 명승 제19호로 지정됐다. 선몽대는 우암산 능선이 내성천으로 내려앉는 벼랑 끝에 자리한다.

앞으로는 내성천의 맑은 물이 흐르고 드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어 진경산수화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주변에는 우거진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굵은 노송의 줄기와 거북 등 같은 껍질들이 이곳에서 살아온 나무들의 시간을 가늠케 한다.

솔숲과 내성천의 흐름과 백사장, 그리고 단애 위에 서 있는 옛 건물이 어우러져 빼어난 풍광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을 한데 묶어 ‘예천 선몽대 일원’이라는 이름으로 명승에 지정된 것이다.

대문채 지붕은 새가 날개를 펼친 듯하고 그 너머로 내성천의 수려한 풍경과 함께 산줄기가 이어진다.
문화유적과 더불어 주위 환경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는 곳을 지칭하는 국가지정 문화재이다.

명승은 국보, 보물, 사적 등과 같이 문화재보호법을 근거로 문화재청이 지정하여 발표한다.

지친 현대인들을 위해 향유할 수 있는 우리의 문화유산으로서 휴식과 위안의 장소를 제공한다. 그 안에 있는 나무와 풀 한 포기, 작은 바위 하나에도 우리의 역사가 곳곳에 서려 있다.

거북 등 같은 껍질의 줄기들이 비틀어 오르는 거목소나무 숲은 신선이 내려와 놀았음직한 풍경이다.
◆소나무 숲

백송리 마을 옆으로 이어진 시원한 가로수 터널을 지나면, 문이 활짝 열리듯 내성천 물길과 십 리에 이른다는 백사장과 빼어난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송림 사이에는 커다란 돌비석 두 개가 세워져 있다. 하나는 ‘선대동천(仙臺洞天)’이라 새겨진 비다. ‘선몽대가 산천에 둘러싸여 훌륭한 경치를 이루고 있다’는 의미다. 그곳에서부터 신선의 땅이 시작된다는 설명으로 느껴진다.

또 하나는 ‘산하호대(山河好大)’로 ‘산이 좋고 하천은 크고 길다’라는 의미다. 용이 승천하듯 힘 있는 몸짓으로 비틀어 오르는 거목소나무 숲은 신선이 내려와 놀았음직한 풍경이다. 송림이 끝날 무렵 우암의 기념비도 보인다.

선몽대 숲은 백송리 마을에서 내성천으로 연결되는 수구를 막아 수해를 방지한다. 매서운 겨울바람을 차단함으로써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했을 보호림 또는 풍수상 비보림(裨補林)으로 보인다.

소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펴고 눕는다면, 신선이 꿈속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시간이 멈춘 듯 느리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휴식하기 좋은 곳이다. 사각사각 밟히는 모래 소리가 기분을 좋게 한다.

숲을 지나 모래밭이 거의 끝나는 곳에 선몽대가 위치한다. 자연 암반을 있는 그대로 쪼아 만든 돌계단이 선몽대 입구에 있다. 신선만이 딛고 오를 수 있는 계단이라는 의미로 느껴진다.

퇴계선생의 친필인 선몽대 현판은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 전시실에 소장되어 있다.


선몽대는 1563년(명종18)에 우암(遇岩) 이열도(李閱道)가 창건했으며, 그는 퇴계 이황의 종손(從孫)이며, 문하생이기도 하다.

선몽대는 우암이 그 자리에서 신선이 노니는 꿈을 꾸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그는 선조 9년 별시에 문과 급제해 승문원정자, 사헌부감찰, 형조정랑, 경산현감 등을 지냈다.

관리로서 청렴 강직했던 그는, 당시 관찰사의 그릇된 처사를 대하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고향인 호명면 백송리로 돌아와 선몽대를 지었다.

우암산 북서쪽 벼랑 위에 내성천을 바라보며 정면3칸, 측면2칸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세워진 정자다. 기단을 축조하지 않고 천연의 암반을 이용해 필요한 곳에만 초석을 놓았다.

1623년에 큰비로 무너져 1671년에 중건하는 등 이후 몇 차례의 보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우암이 신선이 노니는 꿈을 꾸고서 내성천이 바라보이는 곳에 지었다는 선몽대 건물.


◆저명인사들의 친필 시

그곳에는 당시의 저명인사가 많이 모여 시를 지어 읊으며 선몽대의 창건을 축하했다고 한다.

이황은 선몽대(仙夢臺)라는 현판 글씨 석 자를 친필로 써 주었다. 현재 퇴계선생의 현판은 안동에 있는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 전시실에 소장돼 있다.

전시 설명문에는 ‘글씨에도 선계에 노니는 듯한 초탈적 감성이 미묘하게 묻어난다. 송설체의 유려한 필법 위에 왕희지의 굳세고 단정한 이른바 ‘퇴필’의 전형적인 서풍’이라고 적혀 있다.

신선만이 딛고 오를 수 있는 계단이라는 의미로 자연 암반을 있는 그대로 쪼아 만든 돌계단.


퇴계는 ‘선몽대에 지어 보냄(寄題仙夢臺)’ 이라며 친필로 시도 써주었다.

노송 속 높은 누대 푸른 하늘에 꽂혀있고(松老高臺揷翠虛)/ 강변의 흰 모래 푸른 절벽 그려내기 어렵노라(白沙靑壁畵難如)/ 내 지금 밤마다 선몽에 의지해 구경하니(吾今夜夜憑仙夢)/ 예전에 기리지 못하였음을 한탄하지 않노라(莫恨前時趁賞疎).

그 후 많은 선비, 문인들이 이곳에 모여 내성천을 굽어보며 시를 읊었다.

이열도는 퇴계 문하에서 당대의 석학들과 수학했다. 조정에 진출해 벼슬살이했던 인물이기에 약포 정탁, 서애 류성룡, 청음 김상헌, 한음 이덕형, 학봉 김성일 등 당대 유학자들이 친필시를 남겼는데, 목판에 새겨져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다.

현재 걸려있는 편액들은 모두 한국국학진흥원에 있는 원본의 복제본이라고 한다.

‘산이 좋고 하천은 크고 길다’라는 의미의 ‘산하호대(山河好大)’비석.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의 강화를 반대한 척화파의 거두 청음 김상헌도 훗날 선몽대에 올라 시를 남겼다.

모래는 깨끗하고 냇물 맑아서 텅 빈 것 같으니 / 옥산 옥구슬 가득한 정원에 비교함이 어떠할까…. (중략)

1599년 가을에 참봉 조여익이 향시에 합격한 뒤 약포 정탁을 찾아왔다. 조여익은 이열도의 사위다. 그는 선몽대를 이야기하며 이황이 지은 칠언절구를 보여준다. 약포는 옷깃을 여미고 세 번이나 되풀이하여 읽으면서 경탄하고 느낀 바가 있어 절구를 차운해 시를 지었다.

그중 몇 구절을 보면,

남긴 시를 되새겨 외우니 배알하는 듯하네/ 꿈을 깬 후 몇 번이나 선몽대 위에 누워보니/ 바위 가의 높은 대가 온 허공을 끌어당기고/ 적송은 구불구불 늙은 교룡 같구나/ 백 년의 세월이 눈길 돌리듯 짧은데/ 늘그막에야 속세의 꿈이 헛됨을 깨달았으니/ 선몽대의 한바탕 꿈 어떠한지 묻노라. (중략)

다산 정약용도 어릴 적에 당시 예천군수였던 부친 정재원을 따라 왔다가 ‘선몽대기’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아버지를 따라 선몽대에 올랐다. 벽 위에 여러 시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중의 하나는 관찰사를 지내신 나의 선대 할아버지께서 일찍이 지으신 것이었다.

아버지께서 손으로 먼지를 털어내고 나에게 읽으라 하고서 말씀하시기를, ‘일찍이 영남에 관찰사로 왔을 때 이 누대에 오르신 것이다.

공이 지금부터 2백여 년 전에 사셨던 분인데, 나와 네가 또 이곳에 올라서 즐기니, 어찌 기이한 일이 아니겠느냐’며 기(記)를 쓰라고 하셨다”.

다산의 3대가 시간은 달리했으나, 같은 공간에서 시를 지어 남겼다.

당시 인근 지역의 선비나 관리들은 자주 선몽대에 올라 시회를 열거나 대화를 나누는 사교의 공간으로 활용했다.

타 지역의 고급 손님들을 초대해 먼 곳의 정보를 듣는다. 통신 미디어가 발전되지 않았던 그 옛날 이곳에서 사교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기도 했을 것이다.

좋은 경치를 보면서 정신을 맑게 하고 세심하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지방 관리들에게는 선정을 베풀기 위해 꼭 필요한 장소였다.

선비들은 그런 곳에 별채를 짓고 그곳을 오가며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위한 수양에 노력했을 것이다.

‘훌륭한 경치로 신선의 땅이 시작된다’는 설명으로 새겨진 ‘선대동천(仙臺洞天)’ 비석.


◆내성천

내성천은 선몽대 일원을 아름다운 비경으로 만든 첫 번째 요소이다.

내성천의 푸른 물은 상류에서 구불구불 감돌아 흘러온 후 선몽대 앞에서 물길을 따라 비단결처럼 여울져 내려간다. 한때는 천변의 백사장이 반짝거린다고 백금리(白金里)라고도 했다.

일부 환경전문가 중에서는 내성천이 육지화 되고 있는 영향으로 백사장에 나타나는 풀밭이 우려된다는 소리도 나온다.

숲의 전체 모습을 촬영하려면 강 건너편에서 보는 게 제격이란 생각에 신발 벗고 바지를 걷은 채 얕은 강물 속으로 들어갔다.

5월이긴 하나 아직은 서늘한 강물의 기운이 종아리를 감돌며 스친다. 고개 들어 바라보니 펼쳐진 소나무 숲도 내성천 물에 비친 우암산 선몽대의 반영도 둥실 뜬 흰 구름도 모두가 아름다운 정경이다.

손을 담가 만지는 물은 흘러가는 마지막 물이자 다가오는 첫 물이다. 지금 이 시각이 바로 그렇다.

(글·사진= 박순국 언론인)

박순국 언론인


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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