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키스/ 최정란

장미와 입을 맞추었지/ 가시를 끌어당겨 장미 향기를 입술 안으로/ 깊이 빨아들였지/ 장미는 벌린 내 입을 더 크게 벌리고/ 내 심장을 꺼내 가졌지/ 그날부터 나는 심장이 없지// 장미와 같은 시간을 호흡했지/ 바다와 하늘도 같은 고요를 들이쉬고 내쉬었지/ 별의 어깨를 출렁거리며 밤과 낮이/ 파도처럼 흰 한숨을 몰아쉬었지/ 그날 장미에 심장이 생겼지/ 세상은 장미의 들숨과 날숨으로 채워졌지// 나는 한 점 후회 남김 없어/ 다만 후렴이 들어간 노랫말을 쓰기 시작했지/ 짧은 시간을 함께한 꽃은 빨리지지/ 짧은 시간에 모든 숨결을 다 주기 때문이지

- 시집 『장미키스』 (시산맥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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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라 하기엔 아직 미련이 남고, 그렇다고 봄이라고 바락바락 우기기엔 차마 송구스러운 계절이다. 목책과 철책, 부르크 담장을 휘감고 피어있는 장미들로 만방이다. ‘세상은 장미의 들숨과 날숨으로 채워졌’다. 퇴색하고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한 점 후회 남김없이’ 그것들을 부여잡고 생의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오늘 내가 본 장미는 소나무와 뒤엉켜 최선을 다해 시들어가는 중이었다. 세상의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돌고 돌면서 탄생과 소멸을 반복한다. 우리네 인생도 한 번 왔다 가는 것이니 저 붉은 함성처럼 스러질 때까지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고 또 살아내야 한다. 그렇다 어떻게든.

장미와 입을 맞추었는데 ‘그날부터 나는 심장이 없어지고 장미에 심장이 생겼다니,’ 이런 치명적인 유혹이 또 어디 있나. 심장을 빼앗길 만큼 강렬한 숨결, 함부로 늙어가는 여자들은 함부로 저 붉은 기운에 눈도 마주치지 못할 것이다. 간간히 꽃술 다 털린 시들어가는 늙은 장미도 마지막 힘을 다하여 철책에 기대고 있다. 저 새빨간 입술의 여자도 저 장미처럼 한때일 것이다. 빠르게 변하는 계절에 휩쓸려 세상은 그렇게 살아지는 것이고 누구에게나 순번은 돌아오리라. 흥정하고 타협하고 허용하면서 살아왔던 지난 생들을.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에서는 오빠가 서울에다 처음 집을 장만했을 때 엄마가 담장 옆에 장미를 심어주는 장면이 나온다. “엄마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장미묘목을 사와서 담장 가까이에 구덩이를 파고 허리를 굽혀가며 심었다. 엄마가 콩이라든지 감자라든지 들깨가 아닌, 배추나 무나 고추같이 씨앗을 뿌리든 모종을 하든 수확해서 먹을 것이 아닌, 보기 위해서 꽃을 심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렇듯 장미는 다른 소출의 계산이 개입되지 않고 순전히 꽃만을 위한 사치의 꽃이다. 꽃의 광휘만을 위한.

어렵게 집을 장만한 자식의 행복이 장미향처럼 세상에 가득 퍼지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 담벼락 옆에 장미를 심도록 하였을 것이다. 자신은 그렇게 살지 못했지만 자식들만은 장미처럼 화려하게 폼 나게 살기를 바라는 염원이다. 동백이 그러하듯이 비록 짧은 생일망정 붉게 타오르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다만 후렴이 들어간 노랫말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지. 장미는 사치의 꽃이지만 사람을 풍성하게 수식하는 꽃이다. 꽃보다 빵이 먼저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정작 장미가 가장 필요한 시기는 우리의 삶이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과할 때이리라. 가장 거칠어진 그 시간이리라.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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