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철환객원논설위원
▲ 오철환객원논설위원
대구시청사는 대구의 규모와는 맞지 않다. 청사를 다시 신축해야 할 필요성은 충분하다. 다른 곳으로 이전할 수도 있지만 그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우리는 걸핏하면 뭔가를 이전하려고 한다. 성마르고 싫증을 잘 내서 그런가. 학교도 그렇고 관공서도 그렇다. 사는 집도 밥 먹듯이 옮긴다. 심지어 도시 전체를 인위적으로 옮기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다른 나라도 그러려니 하겠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수천 년 역사를 간직한 도시가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번성하고 있는가 하면, 몇 백 년 된 집에서 대대로 살고 있는 경우도 많다. 관청이나 유서 깊은 사원도 원래 있던 곳에서 세월을 유유히 견뎌내고 있다. 명문대학교나 세계적 유명기업도 처음 터를 잡았던 곳에서 꿋꿋이 버티고 있다. 그 지역을 찾는 이방인들에게 지난 세월의 발자취를 넉넉하게 보여준다. 그런 곳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세상사가 참 재미있다. 지나간 삶의 흔적이 화수분 같은 먹거리로 탈바꿈한 셈이다. 미래의 세상 사람들은 좀 더 여유로운 생활을 즐길 것이다. 다른 지역의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그 역사적 발자취를 살펴보는 일, 관광 및 여행·탐방이 미래 여가생활의 대세가 될 소지가 크다. 역사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매우 호의적인 트렌드다.

이에 비해 우리 주변은 다소 생경하다. 수천 년 동안 살아온 곳이지만 조상들의 숨결을 느끼기 힘든 환경이다. 선조들의 삶의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다른 원인이 많겠지만 자꾸 옮기고 부숴버린 탓이 크다. 유목민족을 제외하면 우리만큼 옮기는 걸 예사로 여기는 민족도 드물다. 대구만 해도 관청과 학교가 원래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는 예가 많지 않다. 물론 부득이 옮겨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꼭 옮겨야 할 사정이 별로 없는데 굳이 새로운 곳으로 가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합리적 사유와 별개로 갈등유발도 문제다. 대구의 경우 지금 4개 구·군이 신청사를 유치하려고 갈등하고 있다. 신청사가 그 지역의 발전을 보장해주는지도 사실상 의문이다. 현 시청이나 경북도청 후적지 주변지역의 후진 상황은 관청과 그 인근지역 발전이 별 상관관계가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다른 관청 주변도 비슷하다. 관청으로 인해 그 인근지역이 더 발전되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다른 지역보다 오히려 더 낙후되어 있는 상황을 눈여겨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청 유치 경쟁이 치열한 현상은 유교적 관존민비 사상의 낡은 유산일 수 있다. 이제는 과감히 청산해야 할 적폐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청사 현 위치 건립 안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타당한 이유일 수 있다. 비록 예산부족이란 사유가 타당하다 하더라도 가능한 묘수를 찾아내는 노력이 여전히 필요하다. 필요는 창조의 원천이다. 불가능은 없다. 민관공동사업으로 신청사를 짓는 대안이 존재한다. 대구시는 ‘시청타운’ 부지를 제공하고 민간컨소시엄은 건축을 전담하는 방안이다. 대구시가 신청사건립을 위해 모아둔 적립금과 앞으로 더 적립할 금액을 합하면 약 이천여억 원 정도 된다. 이 금액으로 현 청사 인근의 부지를 추가 매입한다면 ‘시청타운’을 조성할 충분한 부지를 확보할 수 있다. 부지만 확보되면 일은 일사천리다. 약 50층 이상의 건축물, 공원 조성, 랜드마크 조형물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시청타운’ 건설을 민관 합동으로 추진할 수 있다. 청사 꼭대기를 전망대와 카페 등으로 활용하면 금상첨화다. 대구시는 청사 공간을 갖고, 민간은 총비용과 적정이윤을 보상하는 수준의 구분소유권을 취하는 구조다. 대구시는 건폐율과 용적률 및 각종 허가권에 대한 재량권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으로 사업을 시종일관 주도할 수 있다. 성공적 사업을 위하여 가능한 편의를 민간에 최대한 제공하되 그 성과를 기여분에 따라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핵심이다. 민간 공간의 용도를 합리적으로 제한한다면 시청사로서의 품위도 지킬 수 있다. 예컨대 사무실, 피트니스클럽, 식당, 카페, 각종 금융기관, 우체국, 슈퍼마켓, 서점 등 건전한 점포 믹스가 가능하다. 경제적 완판이 가능한 ‘핫 플레이스’여야 한다는 점이 이 사업의 전제조건이다. 그래야만 민간에서 적극 달려든다. 경제적으로 수지가 맞는 곳은 중심상권과 근접한 현 위치다. 대구경제 활성화는 덤이다. 상징적 랜드마크는 발상만 바꾸면 쉽게 만들 수 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속된 말로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다. 미래는 도전하는 자의 것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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