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공동칼럼…말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자



말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자

김혜란

방송인·강사

때때로 노랫말이 삶을 다스리는 한 줄 법문이 된다. ‘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가 없나. 날으는 솔개처럼….’ 요즘 하루에도 수십 번씩 중얼거리는 노랫말이다. 새 소재 노래를 많이 만든 이태원의 노래 ‘솔개’의 첫 부분이다. 공식적으로 말로 먹고사는 방송쟁이가 말 안 하고 살 수는 없는데 자꾸 그러고 싶어진다.

날이면 날마다 쏟아지는 사회 뉴스들은 갈수록 충격적이다. 찌르고 다치고 피 흘리고 죽고. 하긴, 대한민국 국민은 이중삼중으로 전쟁터에 서 있다.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말들이 독하다 못해 아주 그냥 사악하다. 말을 무기 삼아 전쟁을 벌이니 전쟁터다. 총알 한 방 맞으면 돌려주는 건 두 방 세 방이고, 총알이 대포가 되고 미사일로 주고받는다.

무슨 전쟁이, 쏘는 당사자들은 멀쩡한데, 착하게 지켜보고만 있는 국민들이 다치고 픽픽 쓰러진다. 보기만 해도 상처가 너무 크다. 혹시 이게 꿈인가 싶어 TV와 각종 미디어를 하루 이틀 끄고 덮었다가 다시 보기도 한다. 웬걸, 상황이 더 심해져 있다. 세간에 최고의 전쟁드라마라고 하는 ‘왕좌의 게임’이 이런 전쟁을 보여 줄까. 드라마인 ‘왕좌의 게임’은 잔인하지만 잠시 머리를 떨구고 성찰이라도 하게 한다. 지금 정치인들이 벌이는 말 전쟁은 아무것도 남는 게 없을 것이 뻔하다.

‘서당개 3년’이 아니라도 이 나라 정치판 몇 달만 지켜봐도 알 수 있다. 정치인들이 전쟁 중 한결같이 앞세우는 주어, ‘국민’들은 이제 정치인들의 말싸움을 강제로 끝내거나 아니면 그들을 사라지게 해줄 ‘어벤져스’를 찾아야 할 상황이다. 말 전쟁의 포화 속으로 끌어들인 당사자들에게 복수하고 싶어진 것이 아니다. 너무도 심각한 현실, 당장 코앞에 국민의 생사가 걸린 일들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대한민국 국민에게 영화는 있어도 현실에서 싸워 줄 어벤져스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또 국민이 피 흘린 채로 답을 찾아야 한다.

지난 초파일에 부처님 전에 촛불을 켜다가 묘안이 떠올랐다. 정치인들을 묵언수행 시키자. 또 종교 타령 나오면 묵상이나 말없이 기도하기도 있다. 국민청원 넣고 안되면 촛불 들면 되지. 안될까. 될 수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안되는 건 없다고 했다. ‘삼육구’ 놀이만 안 하면 된다. 한국영화 ‘달마야 놀자’에서 한 스님의 길고 긴 묵언수행을 깬 것은 삼육구 놀이였으니까. ‘삼육구’ 이 말, 하지 말 걸 그랬나. 자꾸 생각날 것 같다. 살짝 정신줄이 놓인다. 정치인들의 말 전쟁이 국민 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증거다.

우리 삶은 말로 이루어진다. ‘인간은 언어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우리는 말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인 것은 맞다. 문제는 국민을 앞세워 자신들만을 위해 말로 전쟁을 벌이는 이익집단이 도를 넘으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적당히 하고 그치면 될 것을 멈추지 못한다. 한쪽이 딱 한 번만 양보하면 될 것인데 그걸 못한다. 차라리 어떤 철학자의 말처럼 결핍 때문이라거나, 진리를 탐색하기 위해서라면 국민이 통 크게 안아줄 수도 있다. 답 없는 말만 골라서 쏘고 있으니 풀리지도 않고, 부상자만 속출하고 자칫 전사자도 나올 것 같다. 그걸 지켜보는 국민은 울고 싶고 아프다. 유탄에 맞아 피 흘리고 있다.

때로 말을 멈추는 일이 우리 모두를 살리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말을 멈출 수 있는 자, 그런 정치인을 다음 선거에서 뽑으면 된다. 아니, 뽑겠다고 선언하자. 국민들은 그들처럼 많이 말하지 말고 결정적인 한마디만 하자. 말은 많이 하면 할수록 실수가 잦다. 많이 할수록 쓸 말이 없다.

다시 노랫말을 되뇌어 본다. ‘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가 없나. 날으는 솔개처럼….’ 언제까지 이 노랫말을 진리로 들어가는 문, 법문 삼아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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