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지난 9일의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 기념 대담은 문 대통령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상대가 대통령이었다. 우리는 이런 각본 없는 대담에 익숙하지 않다. 그런데 상대인 대통령의 반응도 그렇고 대담 내용보다 대담자의 자세에 대한 비난이 일고 있는 것도 그 반증이다.

시청자들에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과 비교됐을 법하다. 평소 장관은 물론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조차 독대하기 어려웠던 박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도 힘들었다. 탄핵되기 전인 2016년 1월 신년 기자회견은 당시 정연국 청와대대변인은 “사전 질문을 조율하지 않고 질문자도 미리 정하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질문자와 질문 내용이 사전에 흘러나오면서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거기에다 내용면에서도 알맹이 없는 수준 이하였다는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문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소통을 강조했고 몇 차례 직접 대본 없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국민들이 받아들이는 체감온도는 논외로 치더라도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이번 취임 2주년 회견을 어떤 모습으로 할 것인지 내부적으로 많은 논의를 거쳤을 것이다. 형식과 내용면에서 고심 끝에 나온 방안이 KBS기자와의 대담 형식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대담자인 송현정 기자였다. 야당이 주장하는 ‘독재자’라는 평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바로 들이대기도 했고 대통령의 답변 도중에 말을 끊기도 했다. 대통령 답변이 삼천포로 빠지면 표정을 일그러뜨리기도 했다. 그러자 청와대 청원게시판과 KBS 시청자게시판에는 송 기자의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청원이 현재진행형으로 잇따르고 KBS 시청료 거부운동으로 확산되기도 한다.

문 대통령과 대담하는 송 기자는 내가 보기에도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갔다.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의 기자회견에 대한 평가나 상대가 대통령인데 대한 국민적 감시를 너무 의식한 탓일 터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긍정적인 이야기로 수위조절 했다면 대통령 페이스에 말려 아부한다고, 그게 무슨 대담이냐고 매도당할 테고 진작 그럴 줄 알았다는 돌팔매를 각오해야 했다. 그러니 어깨를 석고붕대로 고정하고 눈동자에도 힘을 주고 안면 근육은 강직도를 한껏 높였다. 그래야만 시청자들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라고 믿어 줄 것이라고 자기검열 했을 것이다.

기자의 질문 자세를 두고 버릇이 없다거나 수준이 낮다거나 평가할 수는 있지만 기자는 인터뷰이에 대한 인격적 존경과 업무적 공정 사이에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직업인이다. 그러니 기자에게 예의 없는 질문은 애초에 없다. 단지 뻔한 질문을, 답변을 얻어내지 못하는 줄 알면서도 질문을 위한 질문을 하거나, 상대의 인격을 무시하고 모욕을 주거나, 공개적으로 창피를 주기 위한 질문은 노 생큐다.

국민들은 기자를 인터뷰이의 취향과 관심사에 추임새나 넣는 관제언론 시대의 리포터로 알고 있는 것일까. 그런 현상은 사회적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큰 상대일수록 더욱 심할 수밖에 없다. 송 기자에 대한 비난도 어쩌면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의 대통령 심기를 지레 걱정하는 오버가 만들어낸 결과가 아닌지 의심된다.

회견 이후 송 기자와 KBS에 대한 네티즌들의 빗발치는 항의에도 문 대통령은 전혀 불쾌해하지 않았다고 청와대 핵심관계자가 전했다. “오히려 더 공격적인 공방이 오갔어도 괜찮았겠다”는 문 대통령의 반응은 대담자인 송 기자나 KBS 방송국은 물론 대통령 지지층이나 일부 항의하는 국민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권력자를 대하는 기자들의 인터뷰 준비와 대응 자세의 대전환을 요구한다.

질문에 빠진 내용이 없을 수 없다. 대담에서는 경제 남북문제 국내정치 등 한 가지 주제만 하더라도 세미나를 열어 답을 찾아야 할 사안들도 있는데 모두가 만족할 답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어떤 형식이든 열린 자세의 대담은 자주 할수록 좋다. 그것이 답답할 수밖에 없는 국민에게는 소통의 방식으로 이해될 것이니까. 국민들은 그런 대담에서 대통령의 대답을, 그 행간까지 읽으면 될 일이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보아서야 되겠나.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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