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소녀

킴벌리 브루베이커 브래들리 지음/라임/288쪽/1만1천 원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굵직한 역사를 배경으로 가족의 자격과 의미에 대해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1939년 영국 런던, 열세 살 소녀 에이다는 저녁마다 선술집에 일하러 가는 엄마 대신, 낡은 아파트에서 남동생 제이미를 돌보며 살아간다. 태어날 때부터 오른발이 내반족(발목 관절의 이상으로 발바닥이 안쪽으로 휘는 병)인 탓에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해 방 안을 기어 다닌다. 딸의 장애를 수치스럽게 여기는 엄마 때문에 열세 살이 되도록 집 밖에 한 번도 나가 본 적이 없으며, 오로지 창문을 통해서만 바깥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그해 여름, 영국 정부는 히틀러의 공습에 대비해 런던의 초등·중학교 아이들을 전쟁의 손길이 덜 미치는 시골 마을로 피란 보낸다.

에이다 엄마는 학교에 다니는 제이미만 피란을 보내려 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걷기 연습을 해 오던 에이다는 엄마 몰래 집을 빠져나와 제이미와 함께 기차에 오른다. 얼마 뒤, 에이다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영국 남동쪽 켄트 지역에 도착한다. 아이들은 큰 건물 안에서 한 줄로 쭉 늘어서고, 마을 사람들은 마음에 드는 아이들을 골라 자기 집으로 데려간다. 그러다 맨 마지막에 에이다와 제이미만 남게 된다.

그 지역 여성 자원 봉사 협회 대표인 토튼 여사는 에이다와 제이미를 결혼하지 않은 채 홀로 살아가는 수잔 스미스씨의 집에 데려다 준다. 스미스씨는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에이다와 제이미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 주고 깨끗한 옷을 사서 입힌다. 또 에이다를 병원에 데려가 의사에게 보인 뒤 내반족이라는 진단을 받고 목발을 맞춰 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에이다는 스미스씨 집에서의 안락한 삶이 점점 좋아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진짜 가족이 아니기에 언제든 자신을 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낀다

전쟁의 불안감이 고조되던 어느 날, 스미스씨의 집에 에이다 엄마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들이닥친다. 그길로 에이다와 제이미는 런던의 집으로 다시 끌려가게 된다.

이 책은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어마어마한 역사적 현장을 배경으로, 지독한 장애를 가진 채 삶에 짓눌려 살아가던 열세 살 소녀가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자존감을 세우는 이야기를 정밀하게 그리고 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참혹한 장면을 무기로 삼지 않는다.

너무너무 비극적이지만 식상하기 그지없는 전쟁터로 독자를 막무가내로 끌어들이지 않고, 인간이 가장 어려운 순간과 맞닥뜨렸을 때 오히려 순순히 빛을 발하게 되는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농밀하게 그려내는 데 공을 들여 가슴 먹먹한 감동을 선사한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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