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작은 민주주의의 암적 존재다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말썽 많던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결국 임명되었다. 거액의 주식투자 사실보다 자기 재판과 관련 있는 주식 거래 의혹이 결정적 흠결이다. 이런 점을 대통령이 좀 더 엄중히 고려했다면 감히 임명을 감행했을지 의문이다. 도덕적인 하자는 차치하더라도 그 임명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했다는 점이 가슴 아프다. 헌법재판관 임명 그 자체보다 여론왜곡 내지 여론조작이 더 근본적인 문제라는 말이다.

한 여론조사기관은 두 차례의 헌법재판관 임용 관련 여론조사에서 전혀 다른 결과를 발표했다. 첫 번째 조사에서 ‘부적격’(55%)이 ‘적격’(29%)보다 훨씬 높게 나왔으나 두 번째 조사에서 ‘임명 반대’(44%)와 '임명 찬성'(43%)이 엇비슷하게 나왔다. 후보자 부부의 설득력 있는 해명으로 한 주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차였지만 그 여론이 급변했다고 한다.

문제는 전후 조사의 설문 내용이 전혀 달랐다는 점이다. 첫 번째 조사 설문은 ‘후보자의 헌법재판관 자격’에 대한 적격 여부였고, 두 번째 조사 설문은 ‘대통령의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에 대한 찬성 여부였다. 여론 추이를 보려 했다면 그냥 똑같은 설문을 제시하는 것이 기본 상식이다. 그런데 문제가 된 앞뒤 두 설문은 서로 다르게 설계되었다. 첫 번째 설문은 후보자에 대한 자격을 묻는 것이고, 두 번째 설문은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묻는 것이다. 설문의 주체마저 후보자와 대통령으로 서로 다르다. 서로 다른 조사를 며칠 시차로 실시한 결과를 가지고 후보자에 대한 여론이 급변했다고 둘러대는 모습은 여론조작을 의심케 한다. 반대진영의 아전인수식 주장이라든가 견강부회라고 발뺌해도 속아줄 사람이 별로 없을 듯하다. 조속히 그 진실을 밝히고 상응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민주정치는 여론을 바탕으로 움직인다. 여론을 파악하는 일환으로 소통이 유용하기 때문에 정치인은 소통에 목을 맨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는 여론을 반영하는 도구 개념이다. 선거가 여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면 민주정치를 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런 경우 무늬만 민주주의다. 북한과 같은 공산국가의 예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민주국가에서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지지율이 수시로 조사·발표되고, 그 결과에 따라 당사자들이 일희일비한다. 여론조사 지지율이 떨어지면 기득의 권위도 사상누각처럼 스러지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지지율은 흔히 은행잔고로 비유된다. 그런 점에서 여론조작은 은행잔고를 무단히 올려놓는 것만큼이나 용납할 수 없는 범죄다. 은행잔고 조작은 개인적 차원의 경제 범죄이나 여론조작은 체제를 위협하는 반사회적 범죄다. 좀 더 깊이 생각하면 여론조작은 민주주의의 근본을 흔드는 중대 범죄다. 은행잔고 조작보다 여론조작이 훨씬 더 엄중하게 응징해야하는 이유다. 여론을 호도하거나 왜곡하는 일은 여론조작에 다름 아니다. 여론을 조작하는 조사기관을 발본색원하고 관련자를 무겁게 처벌해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고 국민주권이 바로 선다. 정서적으로 여론조작이 잔혹한 범죄만큼 국민공분을 유발하진 않지만 이성적으로 엄중히 응징해야 민주주의의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이른바 ‘드루킹 사건’도 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의미에서라도 명쾌하게 수사하여 한 점의 의혹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이는 어느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를 떠나 체제의 근본을 수호한다는 의미에서 공정하게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 여론을 조작하여 국민의 뜻과 다른 결과를 초래했다면 그 결과를 바로 잡고 관련자들을 처단하여야 마땅하다. 그 왜곡 규모가 비록 선거 결과를 바꿀 정도는 아니라고 여겨지더라도 여론조작 의도가 입증된다면 일벌백계 차원에서 단호한 처벌 의지를 국민에게 당당히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헌법정신을 수호하고 민주 체제를 유지하는 길이다.

각종 선거가 끝나고 나면 선거 관련 소송이 줄을 잇는다. 갈수록 여론조작 사건이 급증하는 추세다. 여론조작은 각 정당의 후보 경선 단계부터 성행하고 있다. 각 정당의 공천 시스템에 상향식 공천이 도입되고, 여론조사가 그 주요 수단으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에서 승부욕에 사로잡힌 나머지 자칫하면 여론조작에 대한 유혹에 빠지기 쉽다. 남에게 직접 위해를 가하지 않기 때문에 죄의식을 크게 느끼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방법은 여론조작을 하면 반드시 폭 망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여론조작 시도를 원천봉쇄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과 의뢰인을 공히 양벌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여론조작은 민주주의의 암적 존재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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