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책/ 공광규

어느 해 나는 아름다운 책 한 권을 읽었다/ 도서관이 아니라 거리에서/ 책상이 아니라 식당에서 등산로에서 영화관에서 노래방에서 찻집에서/ 잡지 같은 사람을/ 소설 같은 사람을/ 시집 같은 사람을/ 한 장 한 장 맛있게 넘겼다/ 아름다운 표지와 내용을 가진 책이었다/ 체온이 묻어나는 책장을/ 눈으로 읽고/ 혀로 넘기고/ 두 발로 밑줄을 그었다// 책은 서점이나 도서관에만 있는 게 아닐 것이다/ 최고의 독서는 경전이나 명작이 아닐 것이다// 사람, 참 아름다운 책 한 권

- 계간《문학나무》 2012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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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말이다. ‘책은 서점이나 도서관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이렇듯 ‘최고의 독서는 경전이나 명작만이 아닌’ ‘사람’을 ‘한 장 한 장 맛있게 넘’겨 읽음으로써 ‘참 아름다운 책 한 권’을 읽을 수 있다. 사람을 읽는다는 것, 관심과 사랑 없이는 불가하다. 여기서도 알면 보이고, 보이면 느끼게 되고, 느끼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통한다. 사람을 건성으로 쓱 한번 보고 곧장 데면데면 모드로 돌입하면 사람을 알 재간이 없다. 누구든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관심과 흥미의 깜빡이가 깜박거려야 한다. ‘이 사람은 내게 별 볼일 없어’ ‘알아봤자 덕 될 일은 하나도 없을 거야’ 이렇게 속단하고 말면 책의 겉표지가 열리는 건 영원히 불가능하다.

사람만이 아니다. 고영민 시인의 ‘독서’란 시에서는 하늘에서 나무에서도 책을 빌릴 수 있다고 했다. 귀뚜라미에게서도 둥근 애기무덤에게도 책을 빌린다고 했다. 그렇게 사람이나 자연 그 어떤 대상도 경전이 되며 책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그냥 받아 적어 시를 쓴다는 시인들도 여럿 있다. 이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일찍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아니하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뜻이다.

배우기만 하고 도통 사유하지 않는 것도 멍청한 일이지만, 배움을 통한 새로움의 유입 없이 생각만 한다면 그 역시 공허해지고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새로움의 유입이 없는 독서는 독서가 아니며, 그 독서는 반드시 책을 통해 얻어지리라 믿는다. 이론적 공부와 경험적 사고가 조화되지 않고는 인식의 지평이 확대되지 않으며, 진정한 사람과 자연 읽기도 불가능할 것이다. 어제가 ‘세계 책의 날’이었다. 지금의 우리 출판문화는 양적으로만 따진다면 세계 10위권 내의 출판 대국이지만 1인당 독서량은 일본 10권, 미국 8권에 비해 형편없이 뒤지는 2권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

더구나 책에 대한 외경심이나 가치 인정성은 출판의 양적 확대와 반비례하는 듯하다. 책이 아무리 우리의 정신세계를 건강하게 하며 삶을 깊고 풍부하게 이끈다 해도 현실에서의 책에 대한 대접은 형편없다. 더구나 문학, 특히 시집의 가련함은 말할 나위 없다. ‘책의 날’을 맞아 모처럼 서점 나들이를 한번 해보는 것은 어떨까. 책의 향기를 가까이서 느끼기 위해 가까운 도서관을 찾는 것도 괜찮겠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에게 꽃과 함께 책을 선물하는 아름다운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멋진 일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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