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심을 부추기는 사회

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우리는 지금 분노를 대량 생산하고 유통하여 집단 증오심을 부추기는 것이 일상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세월호 5주기를 맞아 나온 온갖 언행들이 우리를 착잡하게 한다. 어린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고혼(孤魂)의 명복을 빌며 유족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하는 모습은 부각되지 않는다. 애통하고 절절한 마음으로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들도 잘 보이지 않는다. 공허한 정쟁과 비수 같은 막말만이 군중들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어느 정치인은 “자식 팔아 내 생계 챙긴 거까진 동시대를 사는 아버지의 한 사람으로 나도 마음이 아프니 그냥 눈감아줄 수 있다. 그러나 에먼 사람한테 죄 뒤집어씌우는 마녀사냥은 사회를 병들게 하고 해당자를 죽이는 인격살인이다”라고 말해 유족들의 분노를 샀다. 그는 세월호 사고 책임자로 자기 당대표 등이 고발당했다는 뉴스를 보고 흥분한 나머지 그런 말을 했다고 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런 사람은 퇴출시켜야 한다. 추모식에서는 야당 대표가 연단에 오르자 일부 추모객들이 ‘피의자 물러가라’고 외쳤다.

대통령은 추모 메시지를 통해 “세월호를 가슴에 간직한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철저히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일부 사람들은 “현 정권 요직에 들어가는 인사들은 평범하지도 가난하지도 청렴하지도 않다. 그런 사람들을 데리고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나”라며 또 다른 비난과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긴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도 오늘만큼은 우리 곁으로 돌아와 가족과 친구,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안아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기억하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정부의 다짐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약속드립니다. 유가족께도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이 말만 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공자가 제자들과 채 나라로 가다가 양식이 떨어졌다. 며칠을 힘들게 지냈는데 안회가 어디선가 쌀을 구해와 밥을 지었다. 밥 냄새가 나서 공자가 밖을 내다보았다. 평소 스승이 숟가락을 들기 전에는 밥에 손도 대지 않던 안회가 밥을 한 움큼 집어 먹는 모습이 보였다. 공자는 안회를 불러 “꿈에 선친을 만났는데, 밥이 다되면 조상께 먼저 제사 지내라 하더라.”라며 둘러서 그를 타일렀다. 이 말을 듣고 안회는 “솥뚜껑을 여는 순간 천장에서 흙이 떨어져 이 밥으로는 제사를 지낼 수 없었습니다. 흙이 든 밥을 선생님께 드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까워서 제가 흙 묻은 밥을 먹었습니다.”라고 답했다. “예전에는 나의 눈을 믿었다. 그러나 나의 눈도 믿을 게 못 되는구나. 예전에는 나의 머리를 믿었다. 그러나 나의 머리 역시 믿을 게 못 되는구나.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라며 공자가 탄식했다. 눈에 보이는 것과 진실은 다를 수 있다. 무엇을 속단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우리는 일단 즉각적으로 반응부터 하고 그다음에 생각하고 따지는 경향이 너무 강하다.

공자의 수제자이면서 청빈의 대명사였던 안회는 공자보다 30년 아래였다. 안회는 스물아홉에 머리가 다 쇠었고 일찍 죽었다. 공자는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 나는 그가 있어서 문인들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다”라며 통곡했다. 안회는 분노를 삭일 줄 아는 인물이었다. 논어 ‘옹야편’에 나오는 ‘불천노, 불이과(不遷怒, 不二過)’는 공자가 먼저 간 안회를 칭찬하며 한 말이다. 말뜻처럼 안회는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같은 잘못을 다시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었다.

우리 사회는 중병을 앓고 있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빈부 격차, 청년과 중장년층 실업, 남남갈등, 세대 갈등, 갑을의 대립 등은 가족과 동료와 이웃이 서로 극단적인 대결을 하게 한다. SNS를 통한 무분별한 폭로와 비방, 불특정 다수에게 가하는 적개심의 표출, 개인의 좌절과 분노를 타인에게 전가하기 등의 행위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맹목적인 증오심과 분노, 극단적 편 가르기가 개인과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시대가 혼란하고 어수선할수록 옛 성현들의 가르침을 다시 되새겨 본다. 고전이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에 답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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