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 박제천



안개꽃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안개꽃 뒤에 뒷짐을 지고 선 미루나무도/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 들판에 사는 풀이며 메뚜기며 장수하늘소도/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 말을 옮겼다 반짝이는/ 창유리에게, 창유리에 뺨을 부비는 햇빛에게/ 햇빛 속의 따뜻한 손에게도 말을 옮겼다/ 집도 절도 차도, 젓가락도 숫가락도, 구름도 비도/ 저마다 이웃을 찾아 말을 옮겼다// (중략) 아침노을은 저녁노을에게,/ 바다는 강에게 산은 골짜기에게/ 귀신들은 돌멩이에게/ 그 말을 새겼다// 빨강은 파랑에게 보라는 노랑에게, 슬픔은 기쁨에게/ 도화지는 연필에게, 우리집 예쁜 요크샤테리어종/ 콩지는 접싯물에게, 태어남은 죽음에게/ 그리고 나는 너에게.

- 시집『나무사리』(문학아카데미,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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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혼자다. 그래서 쓸쓸하고 외롭다고들 하지만 우리 둘레에는 수많은 존재와 생명들이 있다. 그들과 함께 있음을 잊고서 다른 존재들과 단절되어 있다고 여길 때 외로움도 느낀다. 그러나 뭇 생명들은 늘 그 자리에, 그리고 내 곁에 있다. 심지어는 무생물이나 관념적인 것들까지도. 단지 내가 눈을 감고 귀를 막아 그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며 집적대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을 뿐. 쉽게 남에게 마음을 열 수 없다 보니, 내 곁에 있는 살가운 존재들에게조차 눈길을 주지 못한 것이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그들이 다루는 연장과 주변의 돌과 흙, 물 등의 자연물이나 음식, 그리고 옷과 이불에게도 다정한 친구를 대하듯 늘 말을 건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신던 모카신이 헤져 더 신을 수 없게 되었을 때도 말한다. “많은 시간 내 발을 지켜줘서 고마웠어. 네가 없었으면 내가 많이 힘들고 불편했을 거야.” 범사가 그런 식이다. 아침에 해에게 인사하고, 저녁에 달에게 말을 건네고, 밤에는 별과 대화하는 것은 그들의 마땅한 일상이다. 그렇게 삶에서 마주하는 모든 존재들에게 그들은 다정하고 정겹게 인사하고 말을 건넨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을 살핀다. 그들이 불편해하지는 않는지, 혹여 내게 할 말이 있는 건 아닌지를. 이 시에서의 말 걸기 역시 거침없이 스며들고 경쾌하게 증폭된다.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 뿐 아니라 저들끼리의 말 걸기까지 그 소통의 통로는 한없이 넓어진다. 때로는 엿들은 말을 다시 옮기기도 한다. 세상이 온통 다 내게로 말을 건네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은 대체로 아름다운 세상이다. 그 순간이 일회용이 아니고 항용 그렇다면 당신은 세상을 심심치 않게 잘 살아가고 있는 거다. 이사를 하면서 깜박거리는 형광등이 말을 건다. “이제 다 살았다고 별 볼일 없다고 그냥 내빼는 거야?” 뒷목이 댕겨 형광등을 새로 사서 갈아 넣고 왔다.

봄날의 햇살을 가득 받고선 길가의 꽃은 물론이거니와, 때론 투덜거리며 말을 건네는 내 자동차며 뻐꾸기시계에게도 말대꾸를 해본다. 어제는 유리조각이 박힌 발바닥에게 말을 걸었다. 난생 처음으로 정형외과에서 유리를 빼냈다. 쓸쓸하고 외롭다는 건 말짱 거짓이다. 드디어 반창고가 상처에게 말을 걸고, 감기가 코딱지에게 말을 걸며, 자동차 전조등이 가로수와 노란 중앙선에게 말을 건다. 4월의 우울하지만 금빛 햇살아래서 누구에게라도 말을 걸어보자.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말의 주파수를 잘 찾아서 마구 말을 걸고 옮겨보자.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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