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지 말아라/ 정우영

숨가쁘게 기다리다 끝끝내 접히고 만,/ 저 여리디 여린 꽃잎들에게/ 무슨 말을 드려야 할까/ 태초로 돌아가는데도 말이 필요하다면/ 그 중에 가장 선한 말을 골라/ 공순하게 바쳐 올리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궁리해도 나는/ 사랑한다 미안하다/ 이보다 선한 말 찾을 수 없다/ 어떤 말이 더 필요하랴/ 이 통절함 담을 말 어찌 있으랴/ 새벽까지 뒤척이다 마당에 나와/ 팽목항 향해 나직나직 읊조린다/ 사랑한다 미안하다/(중략)/ 이제는 기다리지 말아라/ 가만히 있지도 말아라/ 너는 이제 자유다, 아이들아/ 그러니 가만히 따르지 말고/ 다시 태어나라, 아이들아/ 다시 돌아와 온전히 네 나라를 살아라/ 너희가 꿈꾸던 그 나라를 살아라/ 사랑한다, 아이들아/ 내 새깽이들아.

- 추모시집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작가회의,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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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5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피다진 ‘꽃잎들에게’ 고개 들어 새로 해줄 말이 무엇이랴. ‘가만히 있어라’ ‘잠자코 있어라’ ‘나서지 마라’ ‘몰라도 돼’ ‘시키는 대로만 해라’ 지금껏 누가 누구에게 했던 말이고 누구를 위한 말이던가. 그래서 정의와 도덕은 짓밟히고 불의와 비리가 판치는 세상에서 무고한 생명만 빼앗기지 않았던가. 공정경쟁은 사라지고 힘 있고 배경 있는 자들의 득세를 그저 우두커니 쳐다만 보았던 세상이지 않았던가.

지난 세월 할퀴고 비틀어놓은 대한민국을 촛불혁명으로 일으켜 세워 새 정부를 출범시켰으나, 지금껏 많은 시련이 있었고 저항에 부딪혀왔다. 여전히 국회는 여소야대로 개혁입법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복잡한 정치적 계산 없이 ‘대도무문’의 길을 가야하리라. 올바른 길로 가면 막힘이 없고, 진리로 향하는 길에는 따로 문이 없다는 뜻의 ‘大道無門’은 한때 YS가 즐겨 쓰던 말이다. 하지만 큰 길을 가는데 잔가지는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논리가 아니라 거치적거리는 잔가지는 과감하게 쳐내는 결단도 필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밀리지 않으려고 진영논리만 앞세우는 것은 곤란하다.

야당의 비판과는 상관없이 원칙과 상식에 입각한 정직한 판단으로 옳은 길이면 가시밭길이라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많은 국민이 정부를 믿고 지지하듯 정부도 국민을 믿고 가야한다. 국민눈높이를 무시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여당의 인재풀이 좁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은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지층이나 당원이라 해도 개인의 탐욕만을 위해 주변에 얼쩡거리는 사람은 솎아내야 한다. 보다 엄격하고 건강한 체질로 거듭나야 적폐청산도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다. 타이타닉호의 참사는 강판을 지지하던 불량 나사못이 최대원인이었다. 달랑 1불짜리 볼트 몇 개로 인해 침몰된 셈이다.

세월호 참사 또한 타이타닉을 능가하는 방만함과 안일함, 그리고 물적 인적 품질의 실패가 가져온 비극이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체질이 개선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안다. 시간도 필요하고 국민들의 인내도 요구된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눈 부릅뜨고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모든 불의와 위기에 맞설 것이다. ‘내 새깽이들’이 ‘꿈꾸던 그 나라를’ 만들기 위해 싸울 것이며 ‘가만히 있지’도 않으리라.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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