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나를 위한 것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프란지파니 꽃향내가 새벽을 연다. 쉼 없이 피어나는 꽃들은 자연의 무조건적인 선물이다, 이국땅 가로수 노란 꽃들이 추운 나라에서 온 객들에게 달콤함을 선사한다. 더운 나라 베트남 봉사의 날이 밝았다. 향기에 취해 거리로 나선다.

이른 아침 도로에는 오토바이 행렬이 줄지어 내달리고 있다. 거대한 메뚜기 떼처럼 요란하다. 버스 사이를 누비는 오토바이는 그야말로 곡예 운전을 하고 있다.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한 어머니는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아무것도 잡지 않고서 옆으로 다가드는 오토바이에 수신호로 제지하고 있어 위험천만한 풍경에 식은땀이 날 정도다. 저렇게 달리다 급정거라도 하면 아이는 그만 공중으로 날아갈 터인데. 차를 타고 한 시간 가까이 달리니 우리가 진료할 장소인 화푸 보건소가 나왔다. 커다란 판초 장막으로 볕을 가린 대기소를 들어서자 열기가 전해온다. 이곳에서 마음을 담아 봉사를 하리라. 그러면서 많은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번 나눔 의료 봉사는 베트남 다낭을 방문해 의료 관련 다양한 상호 교류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의료봉사활동을 전개한다. 메디시티 대구 봉사단은 2014년 네팔을 시작으로 2015년 베트남, 2016년 카자흐스탄, 2017년 키르기스스탄, 2018년 베트남 빈증성을 다녀왔고 올해 베트남 다낭 봉사를 하면 6년째이다. 대구시 의사회, 치과의사회, 한의사회, 약사회, 간호사회 등 5개 단체 봉사회원 64명이 다낭에서 진료할 환자 수는 또 얼마나 많을까.

진료를 시작하려는데 날씨는 아침부터 만만찮다. 더운 날임이 온몸으로 전해온다. 한 사람 한 사람 들어올 때마다 더운 공기가 훅훅 몰려 들어오는 것 같다. 떨어지는 땀을 닦아가며 열심히 증상을 물어본다. 통역으로 나온 베트남 외국어대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노 따우 어 따우’라며 어디가 아픈지? 쉬지 않고 물어본다. 환자와의 의사소통을 도와주기 위해 열심인 현지인인 그녀들 이마에도 땀이 맺혔다. 외국어과 중에서는 한국어과가 단연 인기가 높아 입시경쟁이 치열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내심 흐뭇하였다. 진료 통역해주던 3학년 학생 ‘응웬 티에 쯔엉’은 ‘김혜지’라는 예쁜 한국이름을 스스로 지어서 부르고 있었다. 이름만큼 착하고 지혜로운 그녀는 내 옆에 딱 붙어서 환자의 증상을 자세히 물어준다. 하지만 의학용어를 잘 모르는지 아이들마다 ‘불면증‘이 있어서 왔다는 통역이다. 아마도 열이 나고 몸이 아프니 칭얼대고 선잠을 잔다는 의미이리라. 대충 참고로만 통역을 들으며 진찰 소견에 따라 약을 처방해주었다. 혹시 열이 더 오르면 내일 다시 오라고 이야기해주면서.

평소 한국에 온 베트남 환자들의 진료를 잘해보려고 베트남어 공부를 하였지만, 현지에서 막상 진찰하려니 단어들이 잘 떠오르지 않아 난감하였다. 베트남 학생 혜지는 아픈 아이가 진찰을 잘 받도록 어르고 달래가며 협조하였다. 아이들도 눈망울을 초롱초롱 굴리며 잘 따라주어서 쉽게 진찰이라도 해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봉사 팀은 장비와 약을 다양하게 가져갈 수 없어 처방하려니 아쉬운 것이 많았다.

한 젊은 어머니는 품에 안고 온 아이를 내리더니 눈물부터 흘렸다. 놀라서 진찰해보니 온몸에 피멍이 들어있다. 혈우병이었다. 걷기 시작하면서 이곳저곳 부딪히다 보니 멍이 들어 등줄기에까지 불룩하게 솟아있다. 살려달라는 표정으로 흐느끼고 있는 아기 어머니. 혈액응고 인자를 수혈해 주어야 하는데 병원에 갈 돈이 없다며 눈물 흘리는 그녀를 어찌 달래줄 수 있으랴. 우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다독이다가 나도 그만 목이 메어왔다. 한참 흐느끼던 어머니가 일어나더니 “깜· 언· 반”이라며 고개를 숙인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자신을 이해해주는 것이 ‘고맙다’는 뜻이리라. 꼭 필요한 약이지만, 가져다줄 수 없는 현재의 나의 처지가 안타까울 뿐이다. 베트남인들은 착하고 순박했다. 누군가 그랬다. ‘베트남 여행을 하고 돌아가면 한동안 ’베트남 앓이’를 할 것이라고.

‘4월’의 가락이 바람을 타고 울린다, ‘꽃잎이 난다. 사월이 간다. 너도 날아간다./산 그림자 짙은 이곳에 나는 떨고 있는데/ 봄비 내린다. 꽃잎 눕는다. 나도 젖는구나.//중략//꽃잎이 난다. 사월이 간다. 나도 날아간다.’

물질의 풍요와 삶의 편리함이 내 몸을 한없이 귀하게 대접하는 오늘날, 귀생(貴生)이 오히려 화와 병이 될 수 있고, 내 몸을 적당히 고생시키는 섭생(攝生)이 건강한 생을 위해 이롭다고 한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봉사하는 삶으로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한 날이 되기를 바란다. 봉사는 바로 나를 위한 것일 터이니.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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