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 가방/ 김해자

자궁을 들어냈다, 고 말하는 여자의 웃음에서 만져지는 비릿한 핏덩어리/ 슬픔은 이렇듯 형이하학적이다// 나이 먹을수록 여자의 복부는 부풀어갔다/ 봉분처럼 동그랗게 솟아오른 허리 아래, 여자는/ 뭐든 쑤셔넣기에 안성맞춤인 가방을 숨기고 다녔다/ (중랙)// 숨기기 좋은 질 좋은 가방 속에서 함부로 구겨넣은 비릿한 슬픔 때문에/ 종유석처럼 암 덩이가 자랐을 것이다 칸칸이 달린 지퍼를 열기라도 하면/ 꽁꽁 담아 둔 선사시대의 비릿한 시간들까지 줄줄 새어나오는/ 가죽 가방 속엔 태어나면서부터 환대 받지 못한 탄생의/ 울음소리와 다리 벌리고 하늘을 향해 치켜든 채/ 여자라는 동물만이 짓는 낙태라는 죄,/ 속에서 집어삼킨 슬픔이 숨어서/ 암각화를 완성해 갔다 (이하 생략)

- 시집 『집에 가자』 (삶창,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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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자산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몸은 자기만족과 함께 삶의 자신감을 가져다주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데도 유리하다. 사실 취업과 승진도 잘되고 조건 좋은 배우자를 만날 가능성도 높아진다. 메를로퐁티의 생각처럼 몸은 주체로서 그 사람 자신이기도 하지만 타인에게 대상이 되기도 한다. 푸코가 몸과 권력의 관계를 섬세하게 분석해낸 이후 학문 연구의 중심은 정신이나 영혼에서 몸으로 옮겨졌고 특히 여성의 몸은 페미니즘 연구의 큰 관심사가 되었다. 여성들은 오랫동안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왜곡된 성문화와 가부장적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몸에 대한 자율성이 바로 여성들의 권리임을 알려왔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와 억압은 계속되었다. 여성들의 의식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남성들로 넘쳐난다. 여성의 몸은 남자들이 먼저 지켜야할 우주의 자산이다. 지금은 이런 식으로 지껄이면 귀싸대기 맞을 소리겠는데 예전엔 자리에 앉은 모양만 보아도 아가씨인지 아줌마인지 안다는 따위의 말도 공공연히 유통되면서 킥킥거렸다. 그동안 낙태 문제가 뜨거운 이슈가 되었듯이 여성의 몸은 여전히 이데올로기의 전쟁터이다. 시에서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바처럼 자궁암의 경우만 하더라도 아직 그 발생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으나 시에서 열거한 모든 억압적이고 불순한 행위들이 작용했고 영향을 끼쳤을지 모른다.

다른 암도 마찬가지겠으나 스트레스와 피로가 자궁암의 발병 가능성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몸과 권력의 관계를 세밀히 논하는 것은 밀쳐두더라도 임신 출산 육아의 과정에서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수많은 가부장적 폭력이 텅 빈 ‘가죽가방’으로 내몰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면 나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한때 타오르던 아궁이였던 그곳은’ ‘한때 차오르는 우물이었던 그곳은’ ‘한때 고귀한 탯줄로 연결된 생명이 자라던 그곳은’ ‘이제 텅 빈 가방’이 되어버렸다. 여성의 몸을 국가발전과 유지를 위한 출산의 도구로 여기는 국가의 인구정책에 따라 여성의 출산에 대한 선택권조차 존중받지 못했다. 여성의 몸과 삶에 일어나는 모든 결정권은 여성 자신에게 주어짐은 마땅하다. 그러나 낙태는 헌재 결정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인 가치관으로 신중히 접근할 문제이며, 여성의 인권과 생명윤리의 담론 안에서 깊게 고민해야할 사안인 것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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