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하던 또 하나의 TK(대구경북) 패싱이 현실로 나타났다. 경북도와 경주시가 사활을 걸다시피 하고 추진해온 원자력해체연구소 유치가 부산-울산에 무게가 실린 2개 지역 분리 건설로 사실상 결정됐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중수로 해체연구소는 경주에, 경수로 해체연구소는 부산 기장군과 울산 울주군 접경지역에 걸쳐 설립한다는 것이다. 부산·울산지역의 사업비 규모는 2천400억 원인 데 반해 경주는 700억 원 규모로 알려져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나마 경주에는 분원이 설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산업통상자원부는 15일 오후 부산 기장군 고리 원자력본부에서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부산·울산시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분리건설을 공식화한다.

원전해체는 원전뿐만 아니라 기계, 로봇, 화학 등 종합엔지니어링 겸 융합산업이다. 일반 제조업에서부터 1차 금속, 정밀 과학기기 등 다양한 분야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첨단산업을 망라하는 분야다.

현재 원전해체에 필요한 핵심 기반기술 가운데 17개만 국내에 확보돼 있다. 제염, 폐기물 처리, 환경복원 분야 등에 걸친 21개 기술은 미확보 상태다. 원해연은 관련 기업, 대학, 연구소 등과 함께 미확보 기술을 개발하면서 해체작업을 주도하게 된다.

원전 1기를 해체하는데 드는 비용은 7천500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 그러나 국내 원전 24기 중 중수로는 월성원전 4기뿐이다. 중수로 해체연구소의 미래 경제적 가치가 경수로에 비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경북에는 국내 원전 24기 중 절반인 12기와 관련 시설들이 집중돼 있다. 특히 경주는 중수로 4기를 포함 6기의 원전과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 중저준위 방폐장, 한수원 본사 등이 있을 뿐 아니라 해로, 육로 등의 접근성이 뛰어나 오래전부터 원해연 최적지로 평가받아 왔다.

이번 정부의 원해연 입지분리 결정으로 경북도와 경주시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처지’에 빠지고 말았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경주, 포항, 영덕, 울진 등 경북 동해안 지역의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나온 이번 입지결정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논리가 개입됐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경주와 경북은 월성 1호기 조기폐쇄, 울진 신한울 3·4호기 건설 백지화 등에 이어 원해연 입지에서 마저 소외됐다. 지역민들은 그간 국가 에너지산업에 기여해온 ‘공’에 대해 응분의 대우를 받지 못하게 됐다는 허탈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역의 미래 먹거리를 빼앗기는 TK 패싱이 더이상 되풀이 돼서는 안된다.



지국현 기자 jkh8760@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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