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봉 논설위원

소설가 이문열이 지난해 말 경북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에 있는 자신의 집이자 사랑방인 ‘광산문우’의 현판을 내렸다. 그 자리에는 ‘녹동고가 광고신택(鹿洞古家 廣皐新宅)’이라는 새 현판을 걸었다.

이를 보고 주위에서는 말들이 무성했다. 일부에서는 이문열이 당국의 지원책에 불만을 품고 현판을 뜯어갔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 작가에게 저간의 사정을 들어보았다.

경북도와 영양군은 올해 초 두들마을에 가칭 ‘이문열 문학관’ 건립키로 하고 연구용역에 들어간다고 했다. 도비와 군비 5억 원을 확보, 전시관과 콘텐츠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문학관은 새로 건립하는 게 아니다. ‘장계향 문화교육원(음식디미방)’ 개관에 따라 비어 있는 광산문우 인근의 장계향 예절관을 리모델링해 사용키로 했다. 예산은 25억 원이다.

두들마을은 이문열(71) 작가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이다. 조상 대대로 400년을 살았다. 이 작가는 이곳에 2001년 ‘광산문우(匡山文宇)’를 지었다. 도와 군이 지원한 4억 원을 포함해 모두 20억 원이 들었다. 그는 만년에 이곳에서 후진을 양성하며 살 작정이었다.

-두들마을 집 현판, “이름 부적절해 바꿨다”

이 작가는 그동안 한 달에 한 차례 정도는 고향을 찾았다. 그의 집은 관광 명소가 됐다. 주말마다 관광객들에게 시달리곤 한다. 그의 집은 문학관이라는 표시도 없다. 규모도 인근 ‘객주문학관’이나 ‘지훈문학관’에 비해 적은 것에 의문을 품고 관광객들이 묻곤 했다. 어떤 이는 “선생님, 고향에 무슨 짓을 했길래 이래 푸대접 받습니까”라고 지레짐작해 물었다. 당국에 밉보인 때문 아니냐는 것이다.

이 작가는 “당국이 지어준 집도 아니고 문학관도 아닌데 ‘광산문우’ 현판을 오인한 관광객들이 문학관이라며 다른 문학관과 비교해 말하는데 기분 상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말 현판을 떼 내고 다시 달았다. 작가는 “부적절한 이름의 현판 때문에 문학관으로 오해한 것 같아 소박한 이름으로 새로 현판을 달았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이 작가의 속내에는 지자체에서 수 백억 원씩 들여 지은 객주문학관 및 지훈문학관과 비교하는 것이 섭섭해했던 것 같다. 한국 문단의 대표 작가로서 속도 상했다. 심지어는 기껏 25억 원을 들여 헌 집(옛 장계향 예절원) 내부를 고쳐 그의 문학관이라고 이름을 내세운다 싶어 모욕감 마저 느낀 것 같다. 문인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이 작가의 생가는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조상 때부터 10대 300여 년을 살던 집이다. 그런데 이 집이 자신도 모르는 새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고 다시 매입하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자,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홧김에’ 인근에다 새로 집을 짓고 ‘광산문학연구소’라는 이름을 붙였다. 광산문우 건립 배경이다.

-당국, 작가 위상 걸맞은 문학관 건립해야

이 작가는 두들마을에 문학관 건립 얘기가 나오자 경기도 이천의 집을 정리해 합칠 생각도 갖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규모도 생각보다 작은 데다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해 사용하려고 하자 이 작가는 본인을 욕보인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영양군도 이 같은 사정은 잘 알고 있다. 이 작가의 불편한 심기가 부담이다. 영양군 관계자는 “올해 영양군 예산이 2천800억 원인데 수 백억 원씩 들여 이문열 문학관을 지을 엄두도 못 낸다”며 하소연했다. 이 작가의 문학적 성취와 위치를 감안하면 걸맞은 사업을 해야 하는데 국비 등 지원 없이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신 작가의 이해를 구해 알찬 콘텐츠를 채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인근 ‘객주문학관’은 김주영(80) 작가의 고향인 청송군 진보면에 국비 등 95억 원을 들여 2014년 개관했다. 또 150억 원을 들여 객주테마타운을 조성, 곧 문을 열 예정이다. 김주영 작가는 이곳에 거주하며 집필활동과 후진 양성을 하고 있다.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 청록파시인 조지훈의 ‘지훈문학관’은 국비 등 116억 원을 들여 2007년 문 열었다.

이문열 작가의 고향 사랑은 각별하다. 그가 이 곳에 돌아와 후학들과 함께 작품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러려면 명분과 걸맞은 대우가 필요하다.



홍석봉 기자 dghong@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