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세현 작
▲ 이세현 작
붉은색의 산수화로 잘 알려진 화가 이세현의 개인전이 갤러리 분도에서 열리고 있다.

리넨 천을 덮은 캔버스에 유화로 완성한 그의 풍경화는 실재와 관념이 엉켜서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붉은 산수화는 작가의 간절함과 열정에서 나온 작품이다. 나의 마흔에 그림에만 한 번 몰두해보자는 마음으로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퍽퍽한 삶에 그때까지 그림에만 몰두한 적이 없었다고.

그는 거제도에서 태어나 통영을 오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부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또 홍익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해 서울에서 타지생활을 했다. 그렇게 시작한 그림 인생은 40살까지 특별한 것 하나 없었다.

“40살까지 그림 한점 팔아본 적이 없었다”라는 그의 말은 사실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랬던 그에게 영국 첼시 칼리지로 떠난 유학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40살의 나이에 그림에 한 번 미쳐보자는 마음으로 떠난 유학길에서 졸업 작품 발표 한 달 전 붉은 산수를 처음 그렸다. 그때 완성도 되지 않은 저의 작품을 우연히 세계적인 컬렉터가 보시고는 사겠다며 명함을 주고 갔다. 처음에는 사기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정말 유명한 분이셨다. 그게 처음으로 판매한 작품이었다.”

그리고는 말 그대로 승승장구였다. 대학 졸업 전에서 선보인 3점의 작품은 현장에서 모두 팔렸다.

그의 작품은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낸 풍경이다. 고향의 섬들과 바다, 포구의 이미지는 그가 그린 그림의 구도에 그대로 남아있다. 또 육군 휴전선 전방 부대에서 경험한 시각적 경험이 현재 그를 대표하는 붉은색의 산수를 결정했다. 야간 적외선 투시경에 비친 산과 들녘의 모습은 세계를 보는 새로운 이미지가 됐다.

유학 생활은 이세현 작가가 기억을 재현하는 그리기 방법을 피드백하는 기간이 됐다. 서구 컨템포러리의 중심지였던 런던의 미술대학에는 여러 사조와 이론과 방법론이 난무했다. 이곳에서 작가는 서구 회화와는 다른 관점에서 구축된 자기 미술 세계를 개념미술의 득세와 서양회화의 전통 사이에서 방어해야 했으며, 그 결과가 현재의 스타일로 완성됐다.

그는 스스로 영국에서 마이너 문화였다고 했다. 그는 “보통 유학을 와서 영국 화법을 따라가는 게 기본코스다. 하지만 나는 교수가 아닌 작가가 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우리의 역사, 문화와 절대 떨어지지 않는 진정성 있는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몰두했다”고 했다.

세계적인 컬렉터들은 그 점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치열하게 전략적으로 진검승부가 될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했다.

그는 유럽에서 인정을 받은 후 2009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유럽에서 인정을 받고 왜 한국으로 돌아왔느냐는 물음에 그는 “나이 마흔에 영국을 갈 때 다들 만류했었고 영국에서 작가로 자리를 잡았는데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미쳤다고 했다”며 “백남준 선생님을 생각해봤다. 그분은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작가는 아니다. 미국의 작가였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그 당시 한국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한국작가로서 알려지기 위해 한국 문화 자체에 대해 더 깊이 알고 함께 고민하고 싶었다”고 했다.

영국 유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하루 12시간씩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그는 귀국 이후 한국 사회에서 일어났던 여러 사건의 목격자가 되었고, 그 상징으로서의 도상이 일종의 현장 고발처럼 그림 속에 기록하고 있다. 그 역시 파란 산수화가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20여 점을 만나 볼 수 있다. 전시는 5월4일까지다. 문의: 053-426-5615.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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