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의료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이사

영춘화가 노랗게 물들이는 울타리 돌담을 돌아들며 봄이 무르익어 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며칠 새 햇살은 부쩍 온기를 더해 등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더니 급기야 이곳저곳에 불씨를 옮기고 있다. 강원도 지역 화재 소식을 뉴스로 들으니 문득 한동안 바빠 들러보지 못한 시골집이 걱정되었다. 해외 나눔 의료봉사를 떠나야 하기에 필요한 곳에 조금이라도 다독거려 놓아야 할 것 같아서다.

마당에 들어서니 홍매화가 겹겹이 피어 화사한 얼굴로 반기고 라일락은 보랏빛 향기로 코끝을 물들인다. 여기저기 손댈 곳이 너무 많아 마음만 바쁘게 뛰어다니지 일의 진도는 나가지 않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지만 건조한 날씨와 미세먼지, 잦은 산불도 소리 없이 피어나 은은하게 풍겨오는 꽃향기에 눌려 얼른 좋은 소식 전해주기를 기대한다.

새벽이 되면 의사회관으로 자주 찾아오는 사람들이 살던 나라, 베트남으로 의료봉사를 떠난다. 타국에서 우리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해 주는 젊은이들과 땀 흘리며 공부하는 유학생들이 많이 와 있는 그 나라에 가서 나눔 의료를 실천하기로 하였다. 의사회와 치과의사회 한의사회 간호사회 메디시티 대구협의회 등 여러 단체가 서로 협력하여 사랑을 나누기로 하였다. 아직은 찬 기운이 감도는 새벽일 것이지만, 마음만은 어느 때보다 더 훈훈한 온기를 더해 사랑을 나누고 어려운 이들을 진료하면서 나눔 의료를 잘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한다.

해외 의료 봉사에 동참하게 된 것은 한편의 글이었다. 참으로 놀라운 감동으로 읽었다. 글쓴이가 감명 깊었다는 영화 ‘시티 오브 조이’의 촬영지, 인도 콜카타는 그에게 깊은 추억을 안겨다 주었다고 했다. 더욱이 마더 테레사의 사랑의 선교회가 있는 곳이기도 하여 그는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허리를 굽혀 섬기는 자는 위를 보지 않는다.’며 자신을 스스로 낮추어 빈민가의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 함께 지내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서부 뭄바이에서 무려 36시간 장거리 기차를 타고 일부러 찾아갔다는 지은이. 북새통인 콜카타 하우라 역에서 그가 가진 1루피 동전을 모두 어린 거지들에게 나누어주고 나서야 간신히 역사를 빠져나온다. 그리고는 물어물어 사랑의 선교회를 찾아간다. 당시에는 테레사 수녀가 선종하기 이전이어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애초에는 잠깐이면 되겠지 싶었는데 막상 도착해서 보니 다른 일정을 조정해서라도 최소한 며칠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결국, 한 주 동안의 자원봉사를 자청한다. 도무지 관광하듯 성녀의 얼굴을 일견하러 방문할 곳이 아니란 느낌이 들었다. 선교회 내부 참상을 직접 본 그는 당장 소매를 걷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거리에서 죽어 들것에 실려 온 시체를 닦고 뒷수습하는 일이 그에게 맡겨졌다. 아마도 처음으로 봉사하려는 지원자들에게 일반적으로 주어지는 일인 듯했다. “의사도 아니고 평소에 짐승의 주검조차 대하기 힘들었던 나에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의욕은 앞섰으나 내가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란 느낌이 먼저 들었다. 마스크를 착용했음에도 역겨운 냄새를 참아내는 것 자체가 큰 고역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죽어서 풍기는 냄새를 악취로만 여겨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냥 사람이 가진 다양한 냄새 중의 하나인 것이 아닐까? 나도 머잖아 이런 비슷한 냄새를 풍길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니 그나마 조금씩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가쁜 숨을 연신 몰아쉬며 싸늘한 주검을 닦는 동안 그런 나에게 전혀 미안한 표정을 짓지 않는 그들이 못내 고마웠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닦았고 이내 고와지는 죽은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공연히 내가 행복했었다. ‘우리들의 마음은 항상 봄입니다.’ 선교회 내부 칠판에 분필로 적혀있던 문구가 그제야 마음에 깊이 와 닿았다. 인생의 겨울에서 생을 마친 이들은 나에게 무시로 한없는 봄을 선물해 주었다. 내 인생 처음으로 경험한 나눔의 기쁨에서 오는 빛나는 봄날이었다.”라고 그는 책에서 읊어준다.

그 감동으로 시간이 날 때면 몽골로 네팔로 의료봉사대열에 따라나서곤 하였었다. 그때마다 베풀면서 받는 감동은 몇 배로 가슴 벅찼다. 아무리 소란한 주변 환경이더라도 항상 봄 같은 마음으로 살면서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나누고 베풀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 모임에서 들은 축사가 생각난다. “팔공산~! 아니다~! 백두산~!” 이라던가. “팔십 팔세까지 공도 치고 산에도 가자! ” 가 아니라 “백 살까지 두 발로 산에 오르며 건강하게 살자”. 라고. 그럴 것이다.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누고 베풀다 보면 그것으로 얻는 사랑과 보람은 더욱 커질 터이니. 모두 행복한 마음으로 팔공산에서 백두산까지 외치면서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 봄이기를.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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