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이윤학

벚꽃 피기 전에/ 저 많은 분들은 어떻게 지냈을까/ 저 분들 중에/ 벚꽃이 피기만을 기다린 분이/ 과연 몇이나 될까/ 벚꽃이 피기 전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몰려오기만을/ 누가 기다리기나 했을까// 그래도 올 때는 좀 나았겠지요/ 이쯤 되면 짜증만 앞서겠지요/ 앞이나 끝이나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겠지요// 여기서 주저앉아/ 살 분은 없을 겁니다

- 시집『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2008)

.........................................................................

진해 경주 등 전국의 벚꽃명소가 이번 주 절정을 맞는다. 서울 여의도 등지에서도 오늘부터 벚꽃축제가 시작된다. 이번 주말에는 흰빛과 분홍빛으로 물든 벚꽃을 보기 위해 전국적으로 인파로 넘실거리겠다. ‘나 예뻐?’ 환한 웃음에 손가락으로 v를 그리면서 사진 찍는 사람들로 종일 붐비겠다. 마치 ‘벚꽃이 피기만을 기다린’ 사람들처럼. 솜사탕, 팝콘, 닭꼬치, 번데기, 핫도그, 호떡, 오징어 파는 사람 그리고 엿장수, 사진사, 초상화가는 생계가 걸린 문제라 그렇다 치고 과연 그 모든 사람들이 이 꽃놀이를 위해 겨울을 견뎠단 말인가. 그래서 빵빵거리는 차량들에 지치고 사람에 치이면서도 기어이 비집고 그곳으로 몰려든 것일까.

하지만 그 북새통 속에서 제대로 벚꽃구경이나 할 수 있으려나. 그래봤자 사람구경이겠지만, 사람들은 ‘짜증’이 살짝 나다가도 찌들고 팍팍한 삶에 서로 얼굴 쳐다보며 그렇게나마 잠시 입가에 웃음을 짓는 것이다. 특히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십리벚꽃 길은 꽃비를 맞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꼬옥 잡고 걸으면 사랑이 이뤄지고 평생 행복하게 해로한다 하니 억지로라도 잡은 손 흔들며 서로 예쁜 척 사랑스러운 척 할 것이다. 내장사 길, 내소사 벚꽃 터널, 해운대 달맞이길, 팔공산 벚꽃길, 석촌호수 등등 스토리를 갖다 붙이지 않아 그렇지 어느 벚꽃길인들 그 같은 기분을 자아내지 않으랴.

그럴 땐 ‘앞이나 끝이나 보이지 않은’들 무슨 상관이랴. 어떤 장소와 사람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은 그곳의 빼어난 경치 탓보다는 대개 못 잊을 사람과의 추억 때문이리라. 결국 사람과 장소는 서로 맞물려서 그것을 환기하는 통로가 되는 셈이다. 아니꼽고 더럽고 치사한 그리움일수도 있고, 사람을 도통 놓아주지 않는 지긋지긋하고 몹쓸 그리움일 수도 있겠다. 그리움의 속내를 굳이 드러내지 않으면 또 어떤가. 전신만신 피어오르는 꽃무더기를 보려고 그동안 오금을 저려왔던 건 아니지만, 이 환한 아름다움에 내 어두운 밀실이 탈탈 털리고 탁한 속살도 씻기어지고 기죽었던 춘정이 절로 발동할지 누가 알겠는가.

그런데 어쩌다 한순간 나타나는 이 같은 딴 세상에서 ‘주저앉아 살 분’이 과연 있을까. 요 며칠 전처럼 찬바람이 불고 궂은비라도 한바탕 휘몰아치면 그 연약한 것은 한꺼번에 꽃비가 되고 폭설로 날려 줄행랑치고 말 것을. 범람하는 영혼의 향기도 폭삭 주저앉아버릴 게 뻔하다. 그러고 보면 한꺼번에 화들짝 피었다가 며칠 못가서 와락 떨어지는 벚꽃의 조루성은 왠지 군자답지 못하고 경망스럽기까지 하다. 비유하긴 싫지만 정치판의 오두방정 같기도 하고 습자지처럼 얇은 민심을 들쑤셔 어찌 해보려는 수작처럼도 보인다. 이번 재보선 결과도 어느 쪽에서 보든 본전치기라지만 마음은 개운치 않다. 술에 취하고 일제히 발기한 억조창생의 꽃잎에 취하고 내 시름에 기름을 부은 이 천지간의 화딱지들로 온몸이 알딸딸하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