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렛 미첼을 만나다



이현숙

재미수필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마가렛 미첼이 쓴 소설로 미국의 남북 전쟁과 전·후의 재건 시대를 그려낸 대작이다. 스칼렛과 래트, 멜라니와 애슐리가 표현하는 각기 다른 사랑을 전쟁과 연결해 절묘하게 풀어냈다.

책에는 남부 특유의 전통에 반발하는 한 여성이 독립된 존재로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절망 속에서도 생존을 위한 불굴의 의지와 희망을 잃지 않는 메시지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필자는 중학생시절 이 책을 감명있게 읽었다.

최근 미국의 동부지역인 조지아 주 존스보로의 ‘타라로 가는 길(Road to Tara) 박물관’에 다녀왔다. 박물관에는 가장 먼저 마가렛 미첼의 초상화가 눈길을 끌었다. 강렬한 눈빛과 단정한 자태가 작품 속의 두 여주인공, 스칼렛과 멜라니를 합친 분위기이다. 그녀의 젊은 시절 미모는 몽환적인 이미지를 풍겼다. 책상 위에는 명작을 탄생시킨 타자기도 전시돼 있다. 가슴이 두근두근 방망이질한다. 만지고 싶지만, 손을 댈 수가 없다.

그녀의 남편은 다리를 다친 아내를 위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다가 나중에 타자기를 내밀었다. 따분한 과학 서적을 빼고는 더 읽을 책이 없으니 차라리 당신이 책을 쓰라며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미첼 여사는 어릴 적부터 메모하는 버릇이 있었다고 전했다. 평소 문학뿐 아니라 당시 인물의 전기 등 많은 양의 책을 읽었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서 들은 옛 남부의 역사와 남북전쟁을 기초해 소설을 쓰기로 했다. 10년 동안의 조사와 집필 끝에 1천 페이지가 넘는 소설이 완성된다. 책 속에는 당시 시대와 인물들, 옷에서부터 예의범절에 이르기까지 남부 사람들의 전통이 배경이 됐다.

고난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기도 하고, 부수기도 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당시 무명 작가의 소설이라 출판사에서 거절을 당하자 맥밀런 출판사 편집장에게 한 번만 읽어 달라며 세 번의 전보를 연이어 보낸 집념의 여인이다. 마차를 끌고 남군과 북군 사이를 헤치며 타라로 돌아가는 소설 속의 여주인공, 스칼렛이 바로 그녀 자신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한다.

진열된 세계 각국의 번역본 중에 한국어로 된 것이 자석처럼 눈을 잡아끌었다. 나라에 따라 표지의 디자인과 스칼렛의 모습이 다르다.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1939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빅터 플레밍이 감독하고 클라크 게이블과 비비안 리 주연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며 아카데미상 10개 부문을 휩쓸었다. ‘스칼렛 오하라는 예쁜 편은 아니었다’로 시작하는 소설에 비해 영화 속의 비비안 리는 초록색 눈을 반짝이며 아름답다.

야만스러울 만큼 붉은 땅이라고 했던 타라의 집 모형이 있다. 각국의 영화 포스터가 진열돼 있고, 출연진들의 사진과 인형들이 실제 크기부터 미니어처까지 박물관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개미허리를 돋보이게 할 때 입었던 판탈렛과 커튼을 뜯어 만든 녹색 벨벳 드레스를 비롯해 많은 의상이 전시됐다. 인종차별을 한다며 미첼 여사를 구설에 오르게 한 흑인 노예 매미(번역본에서는 할멈이나 유모로 나옴)에 관한 스토리가 한 코너를 장식했다.

미첼 여사는 자신의 재산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다. 2차 대전에 적십자 간호사로 자원봉사를 하고 그녀가 낸 돈으로 군함 두 척을 만들었다. 진수식 때 찍은 사진을 보니 남자들 사이에 파묻힌 작은 여인, 그러나 활짝 편 어깨가 그들을 당당히 누르고 있다. 무명으로 흑인 의대생들에게 장학금도 지원했다. 초상화에 그녀가 입고 있는 드레스를 보면 적십자 핀이 꽂혀 있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말 없는 메시지를 아직도 전하고 있다.

그녀는 박물관 인근 오클랜드 묘지에 남편과 함께 잠들어 있다.

아쉬움을 남기며 박물관을 나왔다. 눈에 담은 것이 많아서 잠시 그 앞에 놓인 작은 벤치에 앉았다. 꽃가지를 흔드는 봄바람에 마음을 식히는데 바로 옆에 기차역이 보인다. 여기에서 기차를 타면 타라까지 갈 수 있을까. 그곳에 가면 그녀의 표현대로 붉은 들과 싹트는 푸른 목화 그리고 상쾌한 황혼을 만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내일 타라에서 생각하기로 하자. 내일은 새로운 태양이 뜰 테니까(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마가렛 미첼. 시련이 밀려와도 희망을 잃지 말고 살아가라는 강인한 여성을 만났다. 내일, 소중한 내일을 이곳에서 얻어 간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