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일반

삼국유사 기행 4 박혁거세왕

신라의 첫 번째 왕은 박혁거세다. 육부촌장들이 서로 힘을 모아 하나의 나라를 세우기로 합의하고 지도자로 선임한 사람이다.

신라 첫 번째 왕 박혁거세가 탄생했다고 전해지는 신라시대 우물인 나정의 터에서 탐방객들이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이곳에서 팔각정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박혁거세는 지략이든 무력이든 탁월하게 뛰어났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왕으로 있던 61년 동안에는 아무도 신라를 쉽게 넘보지 못했다. 백제로 발전했던 마한이나 변한, 낙랑에서도 쉽게 넘보지 않았고, 왜구들도 한 번 침략했다가 박혁거세왕의 위력에 다시는 넘보지 못했다는 기록이다.

박혁거세가 나라를 다스리던 곳은 지금의 남산 창림사지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신라의 천년 왕궁 월성은 5대 파사왕 때부터 궁궐로 기능했던 것으로 기록이 남아있다.

절대적인 힘을 가진 박혁거세의 탄생과 죽음에 대한 기록은 모두 신화적이다. 그렇지만 탄생지와 죽음에 따른 무덤의 흔적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어, 신화적인 설화에 대한 사실적 추측과 사가들의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신라의 출범, 박혁거세의 탄생과 죽음을 다룬 삼국유사의 이야기 현장을 찾아가 본다.

◆박혁거세왕의 탄생과 신라 건국

진한의 지절 원년은 임자년(BC 69)인데, 3월 초하루에 여섯 부족의 시조들이 각각 자제들을 거느리고 알천의 강변 위에 모였다. 육부촌장들은 “임금이 없어, 다스리려 하나 백성을 이끌지 못한다. 백성들은 모두 제멋대로이다. 덕을 갖춘 사람을 찾아 임금으로 삼고 나라를 세워 도읍을 두어야 한다”고 논의했다.

육부촌장들이 높은 곳에 올라 양산을 바라보니, 그 아래 나정 곁에 이상스러운 기운이 번개처럼 땅에 드리우고, 흰말 한 마리가 무릎 꿇어 절을 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찾아가 살펴보니 자주색 알이 하나 있었고, 말은 사람들을 보고 하늘을 향해 길게 울었다.

알을 쪼개자 어린 사내아이가 나왔는데, 모습이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놀랍고도 이상하게 여겨 동천에서 몸을 씻어주었다. 몸은 광채를 띠고 날짐승 뭍짐승이 춤을 추었으며, 하늘과 땅이 진동하고, 해와 달이 맑게 빛났다. 이 때문에 혁거세라 이름을 지었다.

이때 사람들이 다투어 경하드리고 “이제 천자가 내려왔으니, 마땅히 덕을 갖춘 여자를 찾아 임금의 배필로 삼아야겠네”라고 말했다.

이날 사량리의 알영정가에 계룡이 나타나 왼쪽 옆구리로 어린 계집아이를 낳았다. 몸매와 얼굴이 매우 아름다웠지만, 입술이 닭의 부리 같았다. 월성의 북천으로 데려가 씻겼더니 그 부리가 떨어져 나갔다. 이 때문에 그 냇물의 이름을 ‘발천’이라 했다.

남산의 서쪽 기슭에 궁실을 짓고 두 성스런 아이를 받들어 모셨다. 사내아이는 알에서 생겼는데 알이 표주박과 같아, 마을 사람들이 표주박을 박(朴)이라고 한 데 따라, 성을 ‘박’이라 하였다. 계집아이는 태어난 곳 우물의 이름으로 이름을 붙였다.

두 성인의 나이 열세 살에 이르렀다. 오봉 원년은 갑자년(BC 57)인데 사내아이를 세워 왕으로 삼고, 계집아이는 왕후로 삼았다.

나라의 이름은 ‘서라벌’ 또는 ‘서벌’이라 하였고, 어떤 이는 ‘사라’ 또는 ‘사로’라고도 하였다.

처음에 왕이 계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떤 이는 ‘계림국’이라고도 하는데, 계룡이 나타난 것을 상서롭게 여긴 까닭이다. 일설에는 탈해왕 때 김알지가 태어나던 밤, 닭이 숲속에서 울었으므로 나라 이름을 고쳐 계림이라 했다고 한다. 뒷날 마침내 ‘신라’라는 이름을 정했다.

오릉에서 숭덕전에 이르기 전에 멀찌감치 동쪽에 세워진 홍살문.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만에 왕은 하늘로 올라가고, 7일 뒤 몸만 남아 땅으로 흩어 떨어졌다.

오릉은 정면에서 바라보면 5기의 릉이 모두 보이지는 않는다. 오릉 북쪽에 동서 방향으로 난 산책로.


왕후 또한 죽자, 사람들이 합하여 장례를 치르려 하였다. 그런데 큰 뱀이 나타나 막는 것이었다. 그래서 몸을 다섯으로 각각 묻고 오릉으로 만들고, 또한 사릉(蛇陵)이라 이름 지었다. 담엄사의 북쪽 능이 이것이다.

태자 남해왕이 왕위를 이었다.

알영정이라는 신라시대 우물 앞에 조성된 알영정으로도 불리는 연못.


◆나정, 알영정, 창림사지, 오릉의 흔적

삼국유사 이야기는 대부분 현장이 역사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박혁거세왕의 흔적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그가 탄생한 곳 나정, 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최초의 궁궐이었던 자리 창림사지, 왕비 알영부인이 탄생한 알영정, 그리고 죽어서 묻힌 오릉이 대표적인 흔적이다.

△나정: 나정(羅井)은 한자에서 보듯 신라시대 우물이다. 남산 서북쪽 기슭 평평한 지역으로 소나무숲이 에워싸고 있는 양지바른 박혁거세가 탄생한 곳이다.

발굴조사 결과 팔각형의 정자가 있었던 흔적이 드러났다. 천원지방, 하늘은 둥글고 땅은 방형으로 인간 세상의 진리를 표현했다. 학술조사에 이어, 복원하고 주변을 정비해 새로운 문화유산으로 가꾸어간다는 경주시의 계획이다.

경주 남산의 서쪽 자락, 경주시가지에서도 훤하게 올려다보이는 창림사지 삼층석탑이 우뚝 서 있는 곳. 신라 최초의 궁궐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지는 터전이다.


△창림사지: 창림사지는 신라 최초의 궁궐이 있었던 곳이다. 발굴에서 쌍탑과 쌍귀부 등의 특이한 유물과 유적이 확인됐다. 그러나 수십년째 발굴작업은 답보상태에 머물러 복원 정비사업은 까마득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역사적 가치가 높은 삼층석탑이 최근 보물로 지정된 것이다. 남산에서 규모가 가장 클 뿐 아니라, 탑신에 팔부신중상이 최초로 나타난 특별한 양식의 탑으로 학술적으로도 매우 주목을 받고 있다.

박혁거세의 부인, 왕비 알영부인이 용의 옆구리에서 태어난 우물 알영정.


△알영정: 박혁거세왕의 부인, 왕비 알영이 태어난 우물이다. 지금 오릉 구역 동남쪽에 남아 있는 우물과 작은 연못이 있다. 이 우물가에서 용이 옆구리로 아이를 낳고, 할머니가 길러 왕비가 되었다.

오릉의 전경. 박혁거세왕과 알영부인, 남해왕, 유리왕, 파사왕이 묻힌 곳으로 전해진다.


△오릉: 오릉은 박혁거세왕 혼자의 무덤이 아니다. 삼국유사에서 박혁거세와 부인의 무덤에 남해왕, 유례왕, 파사왕까지 같은 장소에 장사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5기의 봉분이 그렇게 해석된다. 그러나 하늘에서 박혁거세의 몸이 5등분으로 나누어져 떨어져 모아서 장사를 지내려 했지만, 큰 뱀이 나타나 방해하여 결국 나누어 봉분을 만들었다는 기록에 의하면 오릉이 모두 박혁거세왕의 무덤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신라 첫 번째 왕 박혁거세를 기념하고, 제사를 올리는 숭덕전으로 진입하는 첫 번째 관문으로 신이 드나드는 문, 신도로 일컬어지는 영숭문.


오릉에는 지금 5기의 봉분과 박혁거세를 추도하기 위한 사당 숭덕전이 있다. 숭덕전으로 들어가는 홍살문, 신이 드는 신도라 일컬어지는 영숭문과 숙경문을 지나야 한다. 영숭문 옆에는 시조왕의 신도비와 비각이 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 무제 혁거세

신라와 백제, 고구려 등이 나라로 일어설 무렵 진한지역에는 두드러진 12개 씨족이 무리를 지어 살았다. 그중에서 육부촌의 세력이 강해 주변을 아우르며 전쟁에서 가까스로 무리를 유지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웃 간의 충돌은 물론 변한과 마한지역의 침략, 왜구의 노략질에 육부촌장들은 서로 힘을 모아 강한 세력으로 뭉쳐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절대적인 힘을 가진 지도자를 옹립하기로 했다.

육부촌장들이 회합을 벌이고 있던 어느 날, 나정지역에서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왔다. 일제히 그곳을 보니 집채만 한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보름달 같기도 하고, 큰 박과 같이도 보였다.

육부촌장들이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신령스러운 기운을 풍기는 노인이 정좌하고 있는 앞에 여전히 안개 속에 갇힌 듯이 알몸의 건장한 사내가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다. 육부촌장들이 ‘박혁거세’라 이름을 지어주고 신라의 첫 번째 왕으로 옹립한 주인공이다.

오릉은 주차장이 넓게 조성되어 있고, 내부는 기와를 올린 돌담으로 둘러쳐져 있는 넓은 정원이다. 오릉 남쪽에 계절별로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연못 풍경.


노인이 천천히 일어나 육부촌장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들이 찾는 지도자가 이 아이요. 몸에 큰 힘을 지니고 있으나 아직 무예를 익히는 시간이 필요하오. 지금도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당신들이 가진 무술을 각자가 1년씩 이 아이에게 전수해 준다면 훌륭한 지도자가 될 것이오”라고 말했다.

육부촌장들이 모두 저도 모르게 마술에라도 걸린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을 하고 말았다. 그러자 노인은 청년을 향해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로부터 육부촌장들은 돌아가면서 자신들이 가진 비기를 1년씩의 기간에 전수하기 시작했다. 6년이 지나지 않아 혁거세는 몰라보게 성장했다.

신체는 더욱 단단하게 근육질로 다듬어지고, 무술은 이미 육부촌장들이 가전 무술로 전수해 내려오는 비법이 가진 이상의 기술로 발전시켜 오히려 그들에게 발전된 내용으로 거꾸로 전수해 줄 정도였다.

혁거세는 다시 혼자 남산의 토굴에서 6년간의 수련을 거쳐, 나정이변 이후 13년 만에 육부촌을 하나로 묶어 ‘신라’의 왕좌에 올라 즉위식을 가졌다.

오릉 동남쪽으로 연결된 산책로에는 소나무와 대나무가 양편으로 구분돼 서 있다.


박혁거세왕의 다스림은 ‘덕’이었다. 범죄로 얼룩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조차 왕의 온후한 미소 앞에서는 선량한 백성으로 감화되었다. 주변의 낙랑을 비롯한 크고 작은 부족들도 스스로 신라에 속한 나라가 되길 희망하며 항복해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

박혁거세왕이 즉위하고 8년째에 접어드는 해에 왜구들이 대규모 선단을 이끌고 침략해 왔다. 그러나 왕이 직접 앞에 나아가 적들을 꼼짝하지 못하게 발을 묶어 혼쭐을 내었다. 적들은 감히 왕 앞에서 제대로 칼을 들지도 못했다.

왕의 위세는 보기만 해도 오줌을 지릴 정도로 기개가 강했다.

왕은 왜구들에게도 쌀과 보리를 나누어주면서 침략을 못 하게 못 박았다. 왕이 즉위하고 있던 61년간 왜구들은 감히 침략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단지, 왕이 가진 한 가지 약점이라면 독에 대한 면역이 없다는 것이었다. 왕비 알영부인이 약초를 재배해 독에 대한 면역체계를 수십년째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독이라도 완벽하게 해독할 수 있는 해독법을 알아내는 데 성공한 알영부인이 왕에게 시술했다.

알영부인 스스로 체험을 통해 터득한 술법이었다. 그러나 박혁거세가 익히고 있는 심법과 특별한 그의 체질과는 정반대의 성질을 가진 것이었다. 호사다마였다.

술법 마무리단계에서 상극의 기운이 부딪치면서 왕의 몸은 다섯 조각으로 분해되고 말았다. 주변의 땅까지 시커멓게 죽었다. 알영부인도 뒤늦게 왕의 특이한 체질을 생각하지 못했던 자신을 책망하며 스스로 심맥을 끊어 뒤를 따랐다.

신라는 절대적인 지도자와 왕비를 한꺼번에 잃었다. 백성들은 왕의 시신에 접근할 수도 없어 한 달여 독의 기운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다섯 봉분을 만들고, 다시 왕비와 함께 산더미 같은 봉분을 만들어 장사지냈다.

왕위는 이미 장성한 박혁거세의 장자 남해왕이 뒤를 이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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