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과 돈 키호테

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는 동시대 작가로 살다가 1616년 4월 23일 같이 세상을 떠났다. 이 날이 바로 ‘세계 책의 날’이다. 그들은 비슷한 시기에 위대한 두 작품을 출판했다. ‘햄릿’을 쓴 셰익스피어는 큰 고생을 하지 않고 작품 활동을 했다. ‘돈 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는 감옥과 노예 생활 등을 겪으며 비극적으로 살았지만 낙천적인 작품을 남겼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거장인 투르게네프는 두 작품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분석했다. 우유부단한 사색형을 일컫는 ‘햄릿형’과 저돌적인 행동형을 말하는 ‘돈 키호테형’이라는 인간 유형은 투르게네프의 분류에서 유래되었다.

햄릿은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회의론자다. 그의 머릿속은 언제나 자신의 문제로 가득하며 항상 자신을 질책하고 감시한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주시하는 것에서 만족을 얻는다. 그는 무슨 일에서나 주저하며 항상 우유부단에 대한 핑계와 구실을 찾는다.

‘햄릿형’은 일반적으로 뛰어난 통찰력과 지각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사색적이다. 실천력의 결여로 세상과 사람들에게 기여하는 바가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다.

돈 키호테는 진리와 정의를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이상주의자다. 그에게 자기 자신을 위해 산다는 것은 치욕이다. 이웃과 형제를 위해 살며 악을 근절하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확고부동한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행동에 거침이 없고 어떤 경우에도 주저하지 않는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햄릿형’과 ‘돈 키호테형’ 인물은 공존한다. 시대가 처한 상황에 따라 어느 한 유형이 더 절실한 인물형으로 부각된다. 투르게네프가 살던 19세기는 행동하는 지성이 절실하던 시대여서 그는 ‘돈 키호테형’을 높이 평가했다. 우리 사회도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하던 시절에는 억압받고 핍박받는 민중을 위해 몸을 던지는 행동파 지성인을 높게 평가했다.

역사는 돈 키호테형이 더 요구되는 시대라 할지라도 반드시 햄릿형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쪽이 극단으로 흐르지 못하도록 상호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두 유형의 인물 군상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상호 견제하며 조화로운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론에 밝고 공부는 많이 했지만 소심하고 이기적이며 매사에 냉소적인 햄릿형과 제대로 깊이 있게 공부하지 않아 세상 물정은 모른 채 무조건 행동부터 하고 보는 어설픈 돈 키호테들이 우리 사회 도처에 차고 넘친다. 투르게네프가 분석하여 분류한 두 유형의 인간형과는 또 다른, 변형되고 일그러진 햄릿과 돈 키호테들이 사생결단으로 싸우며 서로 목청을 높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교육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브르노 베텔하임은 ‘전체주의는 개인 불안의 반영’이라고 했다. 현대사회에서 대부분의 개인은 불안하다. 집단과 개인의 안전. 자녀 양육, 생계와 노후 등 모든 면에서 불안하다 보니 전체주의적인 사고방식이나 행동에서 심리적 소속감과 안정감을 얻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태극기와 각종 깃발, 촛불을 든 사람들의 의식 근저에는 비슷한 심리가 작용한다. 각자가 기대고 싶은 집단과 대상이 다를 뿐이다.

나치 수용소에서 2년을 보내고 난 뒤 베텔하임이 내린 결론은 “환경이 이상해지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행동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는 수용당한 사람뿐만 아니라 친위대원의 행동 양식도 환경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라면 절대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환경은 사람의 인격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인격을 파괴하기 위한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그 반대 또한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38세의 뉴질랜드 젊은 여성 총리 재신더 아던은 총기 테러로 비탄과 고통에 빠진 무슬림들에게 히잡을 쓰고 다가가서 “여러분이 바로 우리다.”라는 말로 위로하며 그들을 껴안았다. 그녀는 공감과 사랑, 진실과 진정성, 상호 존중과 연대가 어떻게 사회를 통합하고 상처를 치유하는가를 모범적으로 보여 준 것이다. 그녀의 내면에서 얼마나 많은 햄릿과 돈 키호테가 서로 갈등했을까를 생각하다가 우리 사회로 시선을 돌려본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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