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뽑은 대표가 진짜 대표다

오철환

칼럼니스트



최근 선거제 개편과 관련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논란의 중심에 있다. 사표를 줄이고 다당제를 유도한다는 명분이 설득력을 가진다. 하지만 주권자가 직접 대표를 선출할 권리를 제약한다는 점에서 이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국민이 선호하는 정당에 투표하고, 그 정당이 대표를 뽑는 우회적 시스템은 그 민주적 정통성이 부족하다. 민주적 정통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절차가 현실적으로 공정하고 합리적인지 따져봐야 한다. 실력자와의 친소관계, 공천헌금 등으로 인해 비례대표제를 적폐로 의심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수를 늘리는 제도가 유권자들에게 온당하게 받아들여질지 의문이다.

정당 득표에 비례하는 적정 수의 대표 선출을 그 정당에 일임하는 시스템의 필연성이 민주주의에 내재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정당 선호라는 것도 수시로 변한다. 대표 선출을 정당에 백지위임하는 제도는 주권자의 권리를 침해할 소지마저 있다. 국민들이 비례대표제를 달가워하지 않고, 이를 아예 없애자는 사람도 적지 않다. 비례대표제가 국민이 직접 대표를 뽑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대표의 업무가 대부분 정당의 당론보다 개인의 능력에 의존한다는 사실도 비례대표제의 정당성을 약화시킨다.

사표라는 표현도 적합한 용어라 할 수 없다. 낙선자의 득표가 대표 선출에 직접 기여하지는 못하지만 선거에서 나름 그 역할을 하고, 당선자와 낙선자 양쪽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준다. 낙선자가 받은 표도 죽은 표가 아니다. 이른바 사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당제가 과연 장려할만한 선진제도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유럽에서 많이 채택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당제가 바람직하다는 논리는 그 설득력이 약하다. 미국과 영국이 대표적 양당제 국가라는 사실만 보더라도 다당제가 양당제보다 우월하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 대통령제하에서 다당제를 채택하면 정국이 어지러울 수 있다는 개연성은 여소야대 또는 복수 야당이 존재했던 우리 정치사를 되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양당제가 대통령제 국가에서 오히려 대세라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표 방지와 다당제 유도라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명분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셈이다.

독일에서 채택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우리 실정에 맞는 제도라 단언할 수 없다. 독일이 장차 또 다른 선거제로 개편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독일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나라라 하여 선거제도까지 수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회의원 수를 대폭 늘려야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점도 큰 걸림돌이다.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를 늘리자는 제안은 현실성이 없다. 상대방에 그 책임을 떠넘기려는 술수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싸움만 하는 국회를 보며 홧김에 국회의원 수를 확 줄이자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회의원 수를 확 줄이기는 힘들다. 지역구를 줄이자고 하면, 대상지역에 사는 유권자도 반발할 것이고, 그 지역 현역도 반대할 것이다. 정당은 그 이해득실에 따라 찬반이 갈릴 것이다. 지역구를 줄이기 힘들다. 비례대표를 줄이거나 없애는 방법이 그나마 실현가능하다. 보통 국가경제가 성장하고 사회가 복잡다기화하면 국회의원의 수요는 더 늘어나게 마련이다. 국회를 양원제로 개편하여 좀 더 정치한 심의를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원래 국민의 대표는 정치적으로 치열하게 싸워야 할 경우가 많고, 어떤 결론을 낸다 해도 모두 만족시킬 방법은 없다. 그로 인해서 일부 국민에게 욕을 먹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의 대표기관이 결정한 정책이 국가와 국민에게 장래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한 명확한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불평과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은 항상 존재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갈등과 소란은 민주주의의 비용으로 감내해야 한다.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는 주장은 다소 감정적이다. 국민은 대표를 직접 뽑는 일과 그 대표를 직접 심판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국민이 대표를 직접 뽑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를 포기하는 것은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리는 일이다.

선거제 개편은 룰을 정하는 것이다. 비록 합의가 어렵다 하더라도 모든 정당이 참여하는 가운데 그 룰을 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공정한 게임을 기대할 수 있다. 도저히 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기존대로 가는 수밖에 없다. 선거제에 선악은 없다. 선거제 개편이 어렵기 때문에 나라마다 어중간한 제도를 안고 가는지도 모른다. 어쨌든지 국민이 직접 대표를 선택할 권리를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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