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가마이 있으면 된다

이상렬





어쩌면 ‘진짜’는 언어로 담아낼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장면들이 삶의 언저리에 널려있다. 번잡한 일상에서 맛보는 고급스러운 권태, 보내야 하는 옛날을 자꾸만 오게 만드는 기억의 편린들, 엄마! 이 말 한마디에 콧잔등이 찡해지는 이유, 쥐뿔도 없는데 다 가진 것 같은 경탄, 그리고 단 한 사람 곁에 있으매 꽉 찬 충만감.

동네 내과 병원, 한산한 오후 시간을 택해 찾았다. 악전고투하지 않으면 되레 기진맥진하고 마는 시대를 사느라 무탈할 새가 없다. 이번엔 혈압이 말썽이다. 접수하고 대기 중이었다. 맞은편에 진료를 기다리는 노인 부부가 정물처럼 앉았다. 여든은 넘어 보인다. 남색 잠바 차림에다 얼굴에 굵은 고랑이 파인 할아버지는 앉음새가 늠름하다. 옆에 분홍색 스웨터를 입은 할머니는 한 손에 지팡이를 집고 다소곳이 앉아 있지만, 텅 빈 시선은 허공 어딘가에 꽂혀있다. 저렇게 몇 분째, 불편해 보인다. 치매인가.

곧이어, 누군가를 호명하자 할아버지가 일어섰다. 할머니는 뒤를 따른다. 걸음은 좁고 느리다. 순간, 할아버지는 뒤돌아보며 느닷없이 고함을 지른다. ‘고 가마이 있거라!’ 돌발적인 소리는 대기실의 노곤함을 깨웠다. 할아버지의 위력적인 호통에 할머니도 가만히 있고, 나도 가만히 있고, 간호사도 가만히 있고, 모두는 가만히 있었다.

할머니는 진료 대기실 정중앙, 진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몇 분의 시간이 흐른다. 데스크에서 바라보던 간호사가 다가가 의자로 이끈다. ‘할머니,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세요’ 할머니는 꿈쩍없다. 불편한 몸, 초점 없던 눈빛과 달리 어조는 기탄없다. ‘고 가마이 있거라 캤다!’ 키득키득 소리가 진료 대기실 안에 가득하다.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선 채, 마치 한 분만을 기다리기 위해 세상에 온 사람처럼 당신의 한 사람, 할아버지를 기다린다. 그렇게 십 여분은 지났을까. 진료실에서 나온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손을 지긋이 잡아 이끈다. 화석처럼 꼿꼿하던 할머니의 몸이 풀린다. 그리고 병원문을 나선다.

지난가을,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셨다. 치매 증상 때문이다. 뵙고 돌아갈 때면 어머니가 꼭 하시는 말씀이 있다. ‘언제 오노?’ ‘다음 주에요’ 어머니는 다음 주를 기다린다. 다음 주에 못갈 때가 태반이다. 어머니는 그다음 주를 기다린다. 그다음 주도 못갈 때가 잦다. 어머니는 또 그다음 주를 기다린다. 요양병원은 끝없이 ‘기다리는 곳’이다. 자녀를 기다리고, 낫기를 기다리고, 전화를 기다리고, 명절을 기다리고, 하다못해 밥때를 기다린다. 이런저런 희망마저 없을 때는 기다릴 것이라곤 생의 마지막인 사람들도 있다.

세상에 으뜸가는 복지 시스템이라도 나를 기다려 줄 단 한 사람만 할까.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을 해결해 줄 완벽한 제도란 존재하지 않는다. 신부 헨리 나우웬은 자신의 책 ‘상처받은 치료자’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자기를 기다려 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 한, 온전한 정신으로 생명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인생을 응축해 놓은 비유가 있다. ‘단 하룻밤 유숙했다가 가는 나그네의 추억(구약성서/렘14:8).’ 두 날도 아닌 단 하룻밤의 추억 안에서 부부로 산다는 것, 서로를 통해 세월의 퇴각을 바라보면서도 하룻밤이 끝나는 순간까지 부부로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 하룻밤의 농도가 너무 짙고, 추억의 영상이 너무나 강렬해서 역사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리고 기다려 주는, 또 세상 모든 인연이 차단된 자리에 기다릴 필요가 있는 한 사람을 결단코 피하지 않는 사이, 그들이 부부가 아닐는지.

승용차가 신호에 멈췄다. 길 맞은편 노부부가 느릿느릿 걷고 있다. 좀 전, 병원에서 봤던 그 노인 부부다. 정지된 화면 같다. 앙상한 가로수, 한 점 바람 없는 날 잿빛 구름 한 조각 하늘 한쪽에 걸려있다. 그 아래 두 노인, 천천히, 구름처럼 천천히 걷고 있다. 할아버지는 앞서 걷고, 네댓 걸음 뒤에 할머니가 따른다. 걷다가 이번엔 할아버지가 멈춰서 기다린다. 할머니는 다가가 보조를 맞춘다. 죽도록 이어갈 걸음을 약속하는 무언의 합의다. 삭막한 도시의 빌딩 사이로 석양이 진다.

이제 할머니는 할아버지 곁, ‘고 가마이 있으면’ 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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