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 마더 테레사

사람들은 때로 믿을 수 없고, 앞뒤가 맞지 않고, 자기중심적이다. 그래도 그들을 용서하라/ 당신이 친절을 베풀면 사람들은 당신에게 숨은 의도가 있다고 비난할 것이다. 그래도 친절을 베풀라/ 당신이 어떤 일에 성공하면 몇 명의 가짜 친구와 몇 명의 진짜 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래도 성공하라/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받기 쉬울 것이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라/ 오늘 당신이 하는 좋은 일이 내일이면 잊혀질 것이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라/ 가장 위대한 생각을 갖고 있는 가장 위대한 사람일지라도 가장 작은 생각을 가진 작은 사람들의 총에 쓰러질 수 있다. 그래도 위대한 생각을 하라/ 사람들은 약자에게 동정을 베풀면서도 강자만을 따른다. 그래도 소수의 약자를 위해 싸우라. (후략)



- 캘커타 어린이 집 <쉬슈 브라반> 벽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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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수녀는 1950년 인도 캘커타에서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하여 50년 가까이 ‘기도조차 스스로 할 수 없는’ 빈민과 병자, 고아, 그리고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끝없는 사랑을 베풀고 헌신하면서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의 의미, 실천의 중요성을 가르쳤다. 하지만 이 글로 미뤄보아 수녀님께서 행한 사랑도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 고난은 신앙과 기도의 힘, 그리고 평생 무욕의 당당하고 자유로운 신분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수녀님은 “기도는 신앙을, 신앙은 사랑을, 사랑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봉사를 낳는다”고 하셨다.

그런 믿음으로 주변의 삐딱한 시선에 초연할 수 있었고, 오히려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시기하는 자들 앞에서도 정직하고 솔직했으며, 위대한 생각을 실천했다. 아낌없이 나눴으며, 진정한 사랑을 위해 이것저것 재지 않았다. 그래서 ‘평화롭고 행복했던’ 수녀님이셨다. 이글은 세상 온갖 문제의 궁극적 해답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평범한 우리들에겐 먼 메아리처럼 들린다. 하지만 사랑은 큰 사랑만 있는 게 아니다. 고통 중에 있는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옆 사람을 배려하며 따뜻한 눈길 미소 한번 지어보이는 것도 사랑이다.

마음에서 미움을 털어버리고 둘레의 사람과 화해하는 것도 아름다운 사랑이다. 하지만 그조차 말이 쉽지 참 힘들고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임을 통감할 때가 많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이 부족하고 보잘 것 없을지라도 ‘최고의 것’이라 여기며 세상과 나누는 것 또한 큰 사랑이라 말씀하신다. 각자 사랑의 등불을 켜서 어두운 이 세상을 밝혀야겠지만 등불의 사이즈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지난 방한 때 명동성당에서 행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통해 ‘그래도’(anyway)를 말씀하셨다.

강론에서 “만일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할 준비가 돼있지 않다면 어떻게 평화와 화해를 위해 정직한 기도를 바칠 수 있겠는가”라며 ‘용서’를 강조했다. 성경에서도 한없이 용서하라는 말씀이 여러 번 나온다. 과거의 잣대로 북한을 인식하면 남북문제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북을 같은 민족으로서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쳐부수고 궤멸시켜야할 적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평화는 요원하다. 이 부분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남북관계는 끝없는 긴장과 대결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으리라.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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