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

해빙기 / 박경분

그물에 걸린 물살이 얼기 시작하면서/ 물이 뱉어낸 말의 부피는/ 스스로 강의 속살을 꽁꽁 묶었습니다/ 몸부림에 터져 나온 신음의 얼룩들 끌어안고/ 말이 되지 않았던 말들은/ 조용히 얼음 속 결박 아래로 가라앉습니다/ 저밀도의 삶은 헐겁기만 했고/ 미끄러지거나 고꾸라지기 일쑤입니다/ 흐트러진 마음을 잡아당겨/ 얼음의 표피를 수없이 쓰다듬어 보지만/ 견고한 장력은 허물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낯익은 다른 계절이 몰아온 바람이/ 강 언저리부터 발목을 담그면서/ 강가 풍경들은 주섬주섬 제자리를 찾아갔고/ 좀 더 깊은 속으로 발목을 밀어 넣자/ 얼었던 물들이 일제히 옹알이를 시작합니다/ 맨발의 당신이 잠시 다녀간 것뿐인데/ 스르르 물살을 흔들어/ 결박의 매듭이 풀리고야 말았습니다(하략)

- 《너른고을문학23집》 (작가회의경기광주지부,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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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완연한 봄기운이 돌아 가벼운 차림으로 밤 마실 나갔다가 갑자기 휘몰아치는 찬바람에 화들짝 움츠렸다. 3월 중순에 접어들었다 해도 겨울이 완전히 퇴각한 건 아닌 모양이다. 횡포가 만만찮았지만 덕분에 초미세먼지 농도는 좀 낮아진 듯했다. 해빙기는 추위가 풀리면서 얼음이 녹는 시기를 뜻한다. 도회지에서는 잘 못 느끼지만 산간지역에서는 지금이 그 시기다. 그래서 해빙기에는 안전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어느 때보다 이에 대한 주의가 요구된다. 언 땅이 녹고 일교차가 커지면서 낙석으로 인한 사고 위험도 크다.

겨울바람의 날개가 푸득거리며 몸부림치는 동안 강물은 얼음 밑에서 소리죽여 흐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조용조용 고분고분하지만은 않았으나 번번이 미끄러지거나 고꾸라지고 만다. ‘흐트러진 마음을 잡아당겨’ ‘얼음의 표피를 수없이 쓰다듬어 보지만’ ‘견고한 장력’을 허물어뜨릴 수는 없었다. 기다리는 마음은 간절했으나 ‘낯익은 다른 계절이 몰아온 바람이’ 당도해서야 ‘스르르 물살을 흔들어’ ‘결박의 매듭이 풀’렸다. 하지만 강물이 ‘쩡쩡 울기 시작하는’ 그때가 바로 사람에게는 가장 위험한 해빙기라 할 수 있다.

느닷없이 도로에 바윗덩어리만한 돌이 굴러떨어질 수가 있다. 주행 중에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미리미리 붕괴위험지구 등 재해가 우려되는 곳을 잘 파악해 관리해야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해빙기를 위험신호의 부정적인 의미로만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서로 대립 중이던 세력 사이의 긴장이 완화되는 때를 비유적으로 이를 경우에도 같은 말을 사용한다. 이를테면 지난 평창올림픽 이후 남북관계는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의 해빙기를 거쳐 지금은 새로운 봄을 맞을 채비에 분주히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긍정적인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낙석을 굴려 길을 가로막는 사태가 버젓이 대한민국 국회 안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제1야당 원내대표의 금도를 벗어난 폭력적인 말본새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반민족 반통일 수구세력임을 다시금 드러낸 것이 아닐까 우려된다. 자유한국당도 나라사랑하는 마음이야 왜 없을까만 그 방법론을 말함에 있어 한반도평화와 공동번영의 길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을 함부로 내뱉어서는 곤란하다. 박수를 받고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은 자칫 철학도 영혼도 없는 태도로 오해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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