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운동 발상 서문시장 일제의 눈에 가시||부지 좁다며 1922년 인근 못 메우고 옮겨||

대구시 중구 대신동 옛 서문치안센터 앞에는 원기둥 모양의 작은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대구 3·1 독립운동은 1919년 3월8일 오후 2시 큰장 입구에서 장날에 모인 군중을 향해 이만집과 김태련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조선독립 만세를 외침으로써 시작됐다”라고 쓰였다.

이곳은 100년 전 1천여 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모여 독립을 외친 대구 만세운동의 발상지다.

학생, 상인 너나 할 것 없이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가두 행진을 벌였다.

일본 경찰과 군은 총칼로 무자비하게 진압을 했지만 시위대는 비폭력, 무저항으로 시위를 이어갔다.

올해는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서울과 평양에 이어 대구 큰장(서문시장)에서 시작된 대구 만세운동 발자취를 되짚어본다.

〈상〉대구 만세운동 발상지 큰장 옮긴 일제

대구 만세운동의 발상지를 지금의 서문시장으로 알고 있는 이가 많다. 엄연히 말하면 다르다. 1919년 당시 달성 서문밖에 있다고 불린 서문밖시장의 정식 명칭은 큰장이다. 서문밖시장이 지금의 서문시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큰장은 평양장, 충남 강경장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장이었다.

큰장은 지금 대구시 중구 서성로 일대 이른바 오토바이 골목에 있었다.

대구 만세운동의 시작점은 현 섬유회관 건너편 옛 서문치안센터 앞이다. 당시 큰장의 입구다.

큰장이 서던 1919년 3월8일 오후 2시 인근 동산병원, 제일교회 등에 숨어있던 신명학교, 대구고보(경북고) 학생들과 상인 등 1천여 명이 일제히 태극기를 꺼내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만집과 김태련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곧바로 만세 행렬이 시작됐다.

3·1만세운동이 대구에서 3월8일 시작된 것은 이날 큰장이 서는 장날이었다. 군중이 쉽게 모여 만세운동을 펼치기에는 적격인 장소와 때였다.

만세운동에 참가한 학생들은 일제에 들키지 않기 위해 선교사 주택단지 일대인 현재 3·1운동길 90계단을 올라 동산병원을 거쳐 지금의 오토바이 골목으로 내려왔다.

당시 3월1일 서울 파고다공원 등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된 터라 일제의 감시와 경비는 삼엄했다.

당시 섬유회관 뒤편은 가파른 절벽이었기에 일제의 경계가 허술했다. 학생들은 이점을 노려 동산병원에 숨어있다가 이쪽을 통해 큰장으로 향했다.

대구의 만세운동은 한 달간 3차례 전개됐다. 이날 큰장 만세운동에 이어 3월10일 덕산정 남문시장 만세운동이 이어졌다.

일본은 큰장 만세운동 이후 서문시장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만세운동 이후 사람들은 장날마다 큰장에 모여 3월8일 벌어진 만세운동 이야기를 하면서 독립의지를 다졌다.

일제는 식민주의자들이 흰옷을 입고 큰장을 서성거리는 것이 몹시 못마땅했다. 큰장 만세운동 같은 거사가 다시 일어날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결국 1922년 일제는 큰장 터가 좁다는 이유로 지금의 서문시장 터로 시장을 옮겼다.

일제가 강제로 옮겼다는 증거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등 여러 문헌에 기록돼 있다.

지금의 서문시장 터는 천황당이라는 커다란 못이었다.

일제는 이곳을 객토하기 위해 인근 내당동과 비산동에 있던 수많은 고분군을 뭉개버리고 봉토를 실어다 못과 주변 늪지대를 메웠다.

일제는 대구 독립 만세 운동의 시발점인 큰장을 없애버린 것이다. 또 문화재급 고분도 함께 뭉갰다.

천황당 못의 정확한 크기는 기록에는 찾을 수 없으나 전재규 전 대신대 총장이 고증한 당시 지도를 보면 못 크기는 지금의 서문시장 2~3지구 정도다.

일제는 앞서 1905년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대구의 역사를 상징하는 달성을 공원으로 만들어버렸다.

대구 독립운동 유적 100곳 답사 여행을 발간한 정만진 전 대구시 교육위원은 “서문시장은 대구 독립운동의 발상지로 민족정기를 드높이고 장날마다 독립의지를 북돋웠다”며 “그런데 일제에는 서문시장이 눈엣가시처럼 여겨졌고 결국 인근 천황당 못을 메우고 새 서문시장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또 “이 과정에서 내당동, 비산동 고분군까지 훼손한 것은 통탄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 일제의 탄압으로 대구시 중구 서성로 현재 오토바이 골목에 위치해 있던 큰장(서문시장)이 지금의 서문시장 자리로 옮겨졌다. 사진은 현재 서문시장 자리에 위치해 있던 천황당 못 전경이다. 뒤로 보이는 2층 양옥집이 동산병원 내 선교사 사택이다. 사진제공 정만진 전 대구시 교육위원
▲ 일제의 탄압으로 대구시 중구 서성로 현재 오토바이 골목에 위치해 있던 큰장(서문시장)이 지금의 서문시장 자리로 옮겨졌다. 사진은 현재 서문시장 자리에 위치해 있던 천황당 못 전경이다. 뒤로 보이는 2층 양옥집이 동산병원 내 선교사 사택이다. 사진제공 정만진 전 대구시 교육위원
▲ 큰장 만세운동 이후 일제에 의해 천황당 못을 메운 뒤 옮겨진 직후 서문시장의 모습. 못을 메운 터라 지대가 주변보다 낮아보인다. 사진제공 정만진 전 대구시 교육위원
▲ 큰장 만세운동 이후 일제에 의해 천황당 못을 메운 뒤 옮겨진 직후 서문시장의 모습. 못을 메운 터라 지대가 주변보다 낮아보인다. 사진제공 정만진 전 대구시 교육위원


이주형 기자 leejh@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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