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구중서



시골 성당 젊은 신부 아름다운 그 시절

가난과 깊은 정이 평생에 그리운데

어이해 십자가 지고 명동언덕 올라섰나//

불화살 최루탄이 발 앞에 날아와도

하느님 모습 닮은 인간이 존엄해

자유와 민주의 횃불 환하게 밝힌 이



- 시조집 『불면의 좋은 시간』 (책만드는집,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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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구중서 박사의 첫 시조시집에 수록된 작품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구중서 박사는 ‘가톨릭출판사’ 주간 시절 김수환 추기경을 가까이했던 인연으로 추기경께서 선종하신 후 평전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용서하세요’를 펴내기도 했다. 짧은 이 시조 안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삶이 농축되어 녹아 들어있다. 추기경께서는 일생의 지표를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로 삼으셨다.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삶을 사셨고, 마지막 가는 길까지 그리 사시다가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용서하세요”란 짤막한 말을 남기고 10년 전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하느님 닮은 모습으로 우리 가슴에 머물러있다.



당신께서는 가난하고 외롭고 아픈 사람들과 늘 함께하고자 했으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당신은 낮은 곳을 보듬으시며 종파를 초월해서 정의와 평화를 위해 평생 노력하신 분이었다.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길인가를 몸소 실천하고 가르치면서 우리 사회 민주화 역사의 버팀목이 되어 주셨다. 그 존재만으로 어려운 사람에게 힘이 되고, 슬픔과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위안이 되는 분이시다. 도종환 시인은 “한 시대의 어른이신 당신이 계셔서 우리는 덜 부끄러운 역사를 살았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런 분이시기에 떠나신 뒤의 상실감은 컸다. 지금은 추기경님뿐 아니라 우리를 품어주고 가려주던 날개들을 모두 잃은 느낌이다.



불손한 비유지만 김응용 감독이 만들어낸 유행어처럼 ‘김수환 추기경도 없고 법정 스님도 없고 신영복 교수도 가고…’ 어른이 그리운 시대에 어른이 통 뵈지 않는다. 그분들은 역사의 고비 때마다 억압받는 이들과 정의의 편에 함께 섰기에 성직자로서의 직분이 더욱 빛났으며 사회적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추기경의 말씀 하나하나는 한국가톨릭 수장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당신은 떠났지만 당신의 말씀은 지금껏 우리들의 가슴 속에 짙은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평범한 생활 속의 명언도 몇 생각난다. “웃는 연습을 해라. 웃음은 만병의 예방약이자 치료약이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 관용, 포용, 공감, 겸손이 선행된다."



정치권에서는 추기경님과 맞서기도 하고 이용하려 들기도 했지만 이젠 시민사회나 원로정치인 가운데도 그렇게 ‘이용’할 만한 분이 과연 계실까 싶다. 지금 우리에겐 추기경이 두 분이나 계시지만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가톨릭 신자들조차 그 존재감을 별로 못 느끼고 있다. 왠지 명동성당의 종소리도 예전 같지 않다. “사제는 정치에 개입하지 말라”고 한 정진석 추기경의 말씀이 오히려 정치적으로 이용 당한 나쁜 사례도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는 말과 행동을 통해서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개입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신발에 거리의 진흙을 묻힐 수도 있어야 한다”고 교회에 당부하셨다. 재작년인가 염수정 추기경께서 “사회의 부조리를 바꾸는 데 주저하지 말라”는 말씀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자유와 민주의 횃불 환하게 밝힌 이’ 거룩한 바보 김수환 추기경을 기리는 마음은 오래도록 식지 않으리라.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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