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환/ 객원 논설위원, 전 경산교육장



설이 지나갔지만, 설을 쇠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아직도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한다. 올해 설은 어떤 설이었을까?

손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제는 설에도 고향에 가는 사람이 별로 없데요.” 어린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하다니, 아들을 의심했다. 아이 듣는데 무슨 이야기를 해서, 그러나 이야기의 출처는 다른 데 있었다. 손자의 반 친구 중, 많은 아이가 설 연휴 기간에 부모와 함께 해외여행을 갔다나.

참 참한 젊은 친구 C가 있다. C는 자기 일 만해도 복잡하다. 본인이 심혈관 질환으로 쓰러져 위기를 간신히 넘겼고, 부인 또한 위장 계통의 질환으로 사흘이 멀다 않고 병원을 들락거리고 있다. 그런데도 C는 대구에 살고 있는 누나를 친부모 이상으로 돌보고 있다. 누나는 70대 초반으로, 아들이 멀리 서울에 살고 있다. C가 아들을 대신하고 있다. 누나는 무슨 병원을 그리 자주 가고, 무슨 위급한 상황이 그리 많은지, 그때마다 C는 밤낮없이 달려간다. 병원뿐 아니다. 누나는 다니는 절도 많고, 찾아볼 무당도 많아, C가 할 일은 그만큼 많아진다. “자네 어떻게 그리 누나에게 잘하나” 물으면 C는 그저 웃기만 한다. 토요일이나 공휴일에는 아들을 부르라 했지만 아들은 시간을 잘 낼 수 없단다. 그런데 그 아들이 이번 설에도 오지 않았다. 해외여행 때문이다. 손자가 12월부터 3개월 예정으로 며느리와 같이 어학연수를 하러 베트남에 갔단다. 아들은 설 연휴가 되니 손자를 만나러 베트남으로 날아간 거다. 평시에도 부모를 나 몰라라 해놓고서, 설 명절에 아버지 차례도 지내지 않고, 노모도 찾아뵙지 않았다. 참 우울하다. 아들은 설날 아침에 따뜻한 남쪽 나라 바닷가에 있을 것이다. 손자는 무엇을 배울지, 영어를 배울지, 설날은 외국 바닷가에서 유람선 타는 날이란 것을 배울지…, 한숨만 나온다.

우리 어릴 때 설은 설이었다. 음력 그믐께부터 식구들은 바쁘고, 먹거리는 풍요했다. 좁은 방에서 한지 위에 유과를 널려 놓고 말렸다. 우리는 유과를 밟을까 봐 까치발로 다녔지만 가슴은 마냥 두근거렸다. 부엌에서는 감주 달이는 냄새가 달콤하고, 방 한쪽에서는 막걸리 단지가 담요에 싸여 또 다른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어머니는 가래떡을 썰고, 동생들은 그것을 얻어 꼬챙이로 꿰어 노릇노릇하게 구워 먹었다. 섣달 그믐날 밤에 묵은세배를 했다. 먼저 부모님께 묵은세배를 하고 작은아버지께 세배를 갔다. 도깨비가 나온다는 산모롱이 길도 무섭지 않았다.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된다는 부모님 말씀에 오는 잠을 이기려고 눈을 끔벅이다 잠이 들었다.

집안 어른들이 모두 모여 사랑방에서 차례를 지냈다. 제관이 너무 많아 방문을 열어 놓고 마루에서까지 지냈지만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아이들은 제사상의 과일을 먹을 생각에 제사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렸다. 정월 대보름날 마을 어른들은 꽹과리를 치며 집마다 돌아다니며 지신밟기를 했다. 아이들은 덩달아 어른들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밤에는 논이나 밭에 불을 피우며 즐거워했고, 어떤 아이들은 구멍 뚫린 깡통에 짚불을 넣고 빙빙 돌리며 ‘망우리’를 소리 높여 외쳤다. 설은 얼마나 긴지 음력 2월 초하룻날 동네 사람들의 윷놀이가 끝나야 끝난다. 아이들은 그 긴 기간이 늘 설이었다. 정초에는 십이 간지에 따라 금기가 많았다. 소날에는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고. 토끼날에는 여자의 출입을 금했다. 어머니가 아침 일찍이 남의 집 대문을 ‘열어 주라’고도 했다.

옛날의 설은 아이들에게 환상을 심어주었고, 사람의 도리를 체험으로 알게 하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끈한 정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였다. 깨끗하고 새롭게 태어나라는 무언의 인성교육이었다.

올 설 연휴에 해외 여행객이 사상 최대란다. 서울에서 인천 공항 사이의 공항철도가 특별 증설 운행되었다. 서울에 있는 재벌 L 회사 어떤 팀 직원들의 설 연휴 기간 계획이다. 팀원 12명 중 해외 여행객 4명, 국내 여행객 3명, 친정집 방문 3명, 방콕족 2명이었다. 설 차례를 지내러 시댁에 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진정한 우리의 설은 없어질지 모른다. 다만 연휴가 많은 정월 초하루일 뿐이다.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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