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가 다양화·지능화되면서 경찰의 과학수사도 전문화되고 수요 또한 매년 늘어나고 있다. 범죄 형태가 광역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증거물 훼손도 교묘해지면서 살인, 성폭력, 변사, 화재 발생에 따른 과학수사의 전문성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심리·사회·범죄학을 전공한 범죄분석 요원(프로파일러)과 화재감식, 거짓말탐지기(폴리그래프), 법최면, 체취증거(경찰견), 수중과학 수사 관련 인력을 지속해서 충원하고 있다.

특히 대구지방경찰청은 올해 형사과에 포함돼 있던 ‘과학수사계’를 별도의 ‘과학수사과’로 확대 신설, 과학수사 수요에 대응해 나가고 있다.

법최면 수사, 범죄분석, 지문 감식 등 진화하고 있는 과학수사 기법에 대해 알아본다.

칼날에 서린 서늘함이 느껴지자 온몸은 마비된 것처럼 경직됐다.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허리춤에 칼을 들이대는 남자의 위협에 그녀의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살려달라는 애원의 눈빛을 보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사설 경호업체 소속 경호원이었기에 칼이라는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그녀.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봤다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살길은 그저 눈을 꼭 감고 남자의 요구에 응한 뒤 도망갈 방법을 모색하는 것뿐이었다.

사건 발생 이틀 후 경찰서를 찾았다. 죗값을 치르게 하려면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기억이었지만 남자의 얼굴을 기억해야 했다. 그런데 남자의 형체도 얼굴도 떠올릴 수 없었다.

단서가 아무것도 없었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녀는 법최면 수사를 받기로 했다.

칼의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던 순간 얼핏 스쳤던 그의 얼굴이 놀랍게도 떠올랐다. 곁눈질로 봤던 범인의 차량 번호도 기억해냈다.

경찰은 최면 수사에서 나온 몽타주와 차량 번호로 한 달여 만에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 이 상황은 대구에서 발생한 한 사건을 각색한 것이다.

2015년에는 11년 전 채무자를 살해하고 자수한 40대 남성의 자백이 법최면수사를 통해 입증되기도 했다.

우모(42)씨는 2004년 3월24일 오전 2시께 대구 수성구 수성동의 한 골목길에서 주부 이모(당시 33세)씨의 가슴과 등 부위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뒤 달아났다. 범행 후 서울, 충남 천안, 전북 전주 등지에서 숨어지내다 자수했다.

우씨는 11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법최면을 자청, 대구지방경찰청에서 이뤄진 법최면에서 ‘진실’ 반응을 보였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수사 기법이다.

잠재의식에서 기억을 더듬어 당시를 회상해내도록 하는 법최면수사는 1990년대 도입된 이후 사건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하는 등 범인 잡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법최면수사는 성폭력 사건에 주로 활용되는가 하면 연령대에 상관없이 진행되면서 일관성이 떨어지는 아동의 진술에 신빙성을 높일 수 있어 아동 관련 사건에도 유용하게 활용된다.

법최면수사전문관들은 최면수사를 통해 형사들이 원활한 수사를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기억을 회상시켜주는 역할을 맡는다. 수사는 녹음, 녹화 기능과 방음시설을 갖춘 최면검사실에서 진행된다.

최면수사는 인지 인터뷰 기법을 활용한다. 사건을 암시하는 내용의 질문 보다 효과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까지 철저히 계산돼 있다. 장면을 떠올리도록 요구하고 회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사소한 것이라도 상세하게 답하도록 해 비로소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식이다.

본격적인 수사에 앞서 사람마다 청각, 시각, 체감각 등 어떤 감각을 쓰는지에 따라 질문유형도, 말하는 유형도 달라지기에 그 형태를 일단 찾는다. 주로 쓰는 행동 패턴을 토대로 했을 때 기억을 더 잘 회상시킬 수 있어서다.

최면수사 중 눈 떨림이나 침 삼킴, 순간 경직 등 나타나는 반응과 현상도 일일이 기록된다. 최종 평가는 사건을 맡은 형사들의 몫이다.

대구지방경찰청 법최면수사전문관 이만우 경위는 “최면 수사는 사실에 기초를 둔다. 스스로 기억해 이야기할 수 있도록 질문이 다 정해져 있다”고 전했다. 이어 “최면으로 나타나는 기억만으로 기소할 수는 없다. 일반 진술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있어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 대구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과 법최면수사전문관 이만우 경위가 동료를 대상으로 법최면수사 시범을 보이고 있다.
▲ 대구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과 법최면수사전문관 이만우 경위가 동료를 대상으로 법최면수사 시범을 보이고 있다.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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