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곱던 얼레지꽃-어느 정신대 할머니에 부쳐/ 박남준



다 보여 주겠다는 듯, 어디 한번 내 속을 아예 들여다보라는 듯/ 낱낱의 꽃잎을 한껏 뒤로 젖혀 열어 보이는 꽃이 있다/ 차마 눈을 뜨고 수군거리는 세상 볼 수 있을까/ 꽃잎을 치마처럼 뒤집어쓰고 피어나는 꽃이 있다/ 아직은 이른 봄빛, 이 악물며 끌어 모아 밀어올린 새 잎에/ 눈물자위로 얼룩이 졌다 피멍이 들었다/ 얼래꼴래 얼레지꽃 그 수모 어찌 다 견뎠을까/ 처녀로 끌려가던 연분홍 얼굴에/ 얼룩얼룩 얼레지꽃 검버섯이 피었다/ 이고 선 매운 봄 하늘이 힘겹다 참 고운 얼레지꽃



- 시집 『적막』 (창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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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지는 잎의 얼룩이 마치 피부에 나는 어루러기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비슷하게 발음되는 엘레지(elegy)는 본디 ‘슬픔의 시’ 혹은 ‘죽은 이에 대한 애도의 시’ 즉 비가(悲歌)를 뜻한다. 과거 이미자에게 ‘엘레지의 여왕’이란 수식이 늘 따라붙곤 했다. 그리고 숭하게도 순우리말 ‘엘레지’는 ‘구신(狗腎)’ 즉 개의 음경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백합과 꽃들의 형상이 대개 그렇듯 ‘다 보여 주겠다는 듯, 어디 한번 내 속을 아예 들여다보라는 듯’ ‘낱낱의 꽃잎을 한껏 뒤로 젖혀 열어 보이’고 있다. 그래서 향기를 머금지 못해 향기 없는 꽃이 되었다.

시인은 ‘정신대 할머니’를 이 얼레지에다 비유했다. 할머니들이 겪은 수모와 그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두고 ‘꽃잎을 치마처럼 뒤집어쓰고 피어나는 꽃’이라 했다. 그 험악한 세월의 기억들을 어찌 가슴에 안고 맨정신으로 살아올 수 있었을까. 그래서 많은 할머니가 서둘러 생명줄을 내려놓거나 정신줄을 놓아버렸으리라. 그분들의 삶은 하나같이 억울하고 원통하였으나, 아픔을 딛고 꿋꿋하게 일어서신 할머니들도 적지 않다. 그 가운데 인권과 평화를 위해 큰 발자취를 남겨주신 김복동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무력분쟁 중에 만연하게 자행되는 성폭력 문제의 해결을 위해 헌신해 오신 분이다.

오래전 명절날 아버지보다 가방끈이 조금 긴 작은아버지께서 차례를 지낸 뒤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6·25동란 피난길, 여인네의 흰 무명치맛자락에서 남자의 정액으로 얼룩진 자국을 숱하게 보았다는. 행위지가 적군만이 아니라는. 역사나 우리 전쟁소설에서 정직하게 그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는. 전쟁 나면 가장 불쌍한 게 여자와 어린애라는. 아무려면 여자애를 정신대로 끌고 간 일본만 했겠냐는 김복동 할머니와 비슷한 연배인 어머니의 말씀도. 그게 다 전쟁의 비극 아니겠냐며 살아계시면 올해 꼭 만 100세가 되실 아버지의 탄식도 생생하다.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본 여성들에게 한국 국민으로서 사죄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열심히 나비기금을 모아서 지원하겠습니다. 앞으로 커가는 후손들과 어린애들은 절대로 전쟁을 겪어선 안 되니, 모든 나라에서 전쟁이 없도록 힘써주면 좋겠습니다.” 5년 전 베트남전쟁의 성폭력 피해 여성들에게 사죄하며 하신 말씀이다. 콩고와 우간다 등 세계 무력분쟁 지역의 성폭력 피해자들은 할머니를 향해 “당신은 우리의 영웅, 우리의 마마, 우리의 희망”이라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할머니의 용기와 강단은 우리들의 양심을 뒤흔들어 깨웠다. ‘검버섯’ ‘얼룩얼룩’했으나 모진 삶을 승화시킨 누구보다 아름답고 ‘참 고운 얼레지꽃’이었다. 할머니의 명복을 빈다.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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