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는다/ 박완서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꽃피고 낙엽 지는 걸 되풀이해서 봐온 햇수를 생각하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



- 산문집『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현대문학,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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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선생의 시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글을 쓰다가 막힐 때 머리도 쉴 겸 해서 시를 읽는다. 좋은 시를 만나면 막힌 말꼬가 거짓말처럼 풀릴 때가 있다. 다 된 문장이 꼭 들어가야 할 한마디 말을 못 찾아 어색하거나 비어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도 시를 읽는다. 단어 하나를 꿔오기 위해, 또는 슬쩍 베끼기 위해. 시집은 이렇듯 나에게 좋은 말의 보고다.”

이런 담백한 진술이 담긴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등단 40년을 맞아 작고하기 1년 전에 펴낸 선생의 마지막 저서였다. 표제산문의 마지막 문장은 ‘씨를 품은 흙의 기척은 부드럽고 따숩다. 내 몸이 그 안으로 스밀 생각을 하면 죽음조차 무섭지 않아진다.’ 이렇게 끝을 맺는다. 선생의 말씀처럼 죽음의 두려움을 초월한 여유로 가시는 길 아늑하고 편안한 자연과의 교감이었으리라. 하지만 2011년 1월 22일 선생의 갑작스런 부음은 안타깝고 비통하기 그지없었다. 한국문학의 지분이 크게 줄고 한 축이 스르르 헐려나간 느낌이었다.

현기영 선생은 ‘오래된 농담’을 읽고 “연로함이 이토록 총명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고갈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충만해진 이 영혼의 샘물이라니, 참으로 놀라울 일이다”라고 했다. 신경숙은 “정곡을 찌르며 생의 허위의식을 적나라하게 들춰내 보일 때면 글귀신을 본 듯하여 몸과 마음이 소름 돋는다”며 독자들이 막연히 가졌던 생각을 고스란히 대변하였다. 뭔가 말하고 싶은데 표현할 방법이 없는 이야기도 선생의 수중에 들어가면 ‘쫀득하기 이를 데 없는 진경’을 이룬다. 그래서 ‘세상의 시시한 이야기들은 선생이 계셨기에 행복했을 것’이다.

선생께서 가신지 꼭 8년이 흘렀건만 여전히 박완서는 뜨거운 진행형 작가다. 소설은 물론 이렇듯 시를 사랑하는 향훈이며 맑은 웃음, 특유의 따스하고 진솔한 산문까지 공감과 감동을 얻고 있다. 올해는 생전의 유일한 콩트 소설집 ‘나의 아름다운 이웃’의 재간행판이 나왔고, 8주기를 기념하여 후배 작가 29인의 오마주 콩트 모음집 ‘멜랑콜리 해피엔딩’도 출간되었다. 헌사에서 윤이형 작가는 “여성에게 삶의 매 순간이 투쟁임을, 문학이 순응이나 타협이 아니라 격렬한 싸움임을, 평생 온몸으로 체현하며 살았던 사람”이라며 선생을 기렸다.

정세랑은 “한국어로 소설을 읽는 사람이 남아 있는 한, 언제까지고 읽힐 것”이라 했으며, 함정임은 “부끄러움을 깨닫게 해주는 거울이고 방향을 반듯하게 인도해주는 등대”라고 했다. 나도 서가 안쪽 선생의 책들에서 슬쩍 그 유려한 감수성을 훔쳐오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있다. 선생께서 칭찬해 마지 않았던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와 같은 명품 시에 명품 해설에는 미치지 않겠으나, 나도 10년 넘도록 신문에 시를 소개하고 있다. 실은 시를 빌미로 널어놓은 잡담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어 연재한 글을 묶을 생각을 하다가도 주춤거린다.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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