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헌



김광석 거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대구 수성교 옆 방천시장에 있는 작은 골목길은 이제 대형 주차장도 완비되어 근처 대백프라자까지 그 영역이 넓어졌다. 입구에는 기타를 들고 앉아 있는 김광석 동상이 있어 오가는 사람들은 사진 한 컷 찍는 것을 잊지 않는다.

불과 10년 전쯤에 이 방천시장은 문화체육부의 ‘문전성시 사업’에 선정되어 시장 환경 개선 차원에서 개발되었다. 골목길 벽에는 벽화가 그려지고 하나둘 지역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낡은 골목길은 어느새 환한 문화의 거리가 되었다. 가난한 예술가들로서는 임대료 걱정 없이 창작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고, 이들의 창작열기로 뒷골목에 불과했던 거리는 산뜻하게 거듭났다.

그런데 허름한 공간이 살아나기 시작하는 순간, 창작 공간은 자본의 논리에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저렴했던 건물 임대료는 치솟기 시작했고, 예술혼을 불태우던 청년작가들은 하나둘 이 거리를 떠났다. 그 빈자리는 예술혼이 아닌 자본의 이익으로 채워졌다. 작은 카페와 음식점 등이 속속 몰려들면서 새로운 번화가로 자리 잡았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자주 드나들었던 선술집인 ‘참새집’도 보이지 않고, 문전성시 사업 초기 불타던 예술혼도 사라진 채 지금은 관광지를 방불케 하는 지역 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풍문에 의하면 김광석은 이 거리 어디쯤에서 4살 때까지만 살았단다. 그 짧은 인연을 콘텐츠로 개발하여 지역의 새로운 명소로 만든 것은 지역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도 반길 일이다. 문제는 자본의 개발 이익이 지역 고유의 특성을 잡식했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개성만 말살한 것이 아니라 그 지역 주민들 삶의 터전도 몰아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가난하지만 현실을 이겨내면서 그 터에서 자기방식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왔을 누군가의 삶이 쫓겨났다. 상업 자본의 개발폭력은 토박이 주민들로부터 향수마저 앗아갔다.

억지스러운 조형물로 김광석과 인연을 엮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연인원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콘텐츠 개발에는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토박이를 내쫓고 정체불명의 상업성이 난무하는 현장으로 탈바꿈한 현실에서 기대했던 삶이 있는 공간, 문화가 숨 쉬는 거리는 아쉬움으로 돌아왔다.

최근에 목포가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허름한 적산가옥이 있는 목포 구도심 일대를 문화재 거리로 만드는 사업이 추진된단다. 이것 때문이 아니라 국회의원 손혜원이 이 일대의 부동산을 사들여서 떠들썩하다. ‘문화재 거리’는 명분에 지나지 않을 뿐 한 정치인의 부동산 투기라는 것이 그 핵심이다. 낙후된 거리에 생기를 불어넣겠다는 것이 나쁠 리 없고, 또 그곳이 지역 명소로 거듭난다는데 반대할 일도 없다. 그러나 개발과정에서 지역민이 소외되고, 성장 과정에서 토박이 상인이 점포를 내놓아야 한다면, 게다가 그곳이 고향인 이들이 불편을 겪는다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손 의원은 서울 마포구가 지역구이다. 그는 집권당 국회의원이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이다. 이런 그가 목포 구도심에 문화재거리 조성을 한다며 해당 지역에 있는 수많은 땅과 집을 샀다니, 그것도 지인의 이름을 빌려서. 투기 의혹이 불거지자 그는 나전칠기 박물관을 만들어 시민에게 기증하겠다는 개인적인 꿈을 밝혔다. 진위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양치기 소년에게 하도 속은 우리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가 어렵다. 더구나 적폐청산을 부르짖는 정부의 정책이라는 점에서 또 촛불 정부의 집권당 의원이 한 일이라는 사실에서 자기비판을 거치지 못한 처사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문제가 된 목포의 창성장(일제강점기에 요정이었던 건물인데 지금은 게스트하우스로 사용) 주변은 적산가옥들이 즐비한 곳이란다. 일본 제국주의에 시달린 아픔과 그 암울했던 시절을 이겨낸 지역민의 울분이 배어 있는 곳이다. 그곳의 개발이 보존과 현대화가 조화를 이루어 지용의 시 한 구절처럼 아련한 향수를 느낄 수 있다면, 또 우리 근대사의 질곡을 헤아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니, ‘사공의 애달픈 뱃노래, 목포의 눈물’이라도 흥얼거릴 수 있어야 한다.

신천을 따라 도는 김광석거리는 정체성이 모호한 채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하고, 외지 관광객은 김광석의 이미지와 그리움을 좇아 이곳을 찾고 있다. 하지만 그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토박이 주민의 향수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늘도 그 거리에는 변함없이 네온이 반짝이는데, 호객의 불빛으로만 보이는 것은 내 눈이 삐딱한 탓일까.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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