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다리가 달린 집

소피 앤더슨 지음/B612북스/380쪽/1만3천800원



바바 야가는 러시아 전설에 등장하는 마녀다. 숲속에 살며 인간을 잡아먹는다고 알려졌다. 또 바바 야가 집에서 닭다리가 달려서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다.

저자는 러시아 전래동화에 등장하는 바바 야가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이 소설을 썼다. 바바 야가는 무섭고 두려운 존재지만 저자는 바바야가의 따뜻한 면에 집중한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바바 야가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철저한 조사를 거쳐 이 작품을 탄생시켰다.

죽은 사람들을 사후세계로 인도하는 바바 할머니, 닭다리가 달려 어디든 갈 수 있는 집, 그리고 할머니의 뒤를 이을 다음 수호자 마링카가 등장인물이다.

집은 마법을 부려 마링카를 위해 신기한 것들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재미있는 놀이를 하며 함께 놀아주기도 한다. 하지만 12살 마링카에게 이제 이런 건 시시한 일이 되어버렸다. 마링카는 평범한 삶을 꿈꾼다. 친구들과 극장도 가고 공연도 보고 싶다. 마링카는 집이 친구를 사귈 정도로만 한 곳에 머물러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마링카의 집에는 닭다리가 달렸다. 집은 어떤 예고도 없이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멀쩡히 잘 살던 곳을 떠나버린다. 정착하는 곳은 언제나 살아있는 사람들과 멀찍이 떨어진 문명사회 끝자락이다.

마링카는 할머니 뒤를 이을 다음 수호자다. 마링카에게 울타리를 넘는 것은 금기 사항이다. 바바 할머니는 늘 마링카에게 살아있는 사람들을 만나선 안 된다고 경고한다.

마링카는 죽은 사람들만 만나야 하는 현실이 불만이다.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음악, 근사한 이야기가 차고 넘치지만 닭다리가 달린 집은 죽음에 관한 기억으로 가득하다. 빨간 머리 앤을 떠올리게 하는 엉뚱하고 천진난만한 소녀 마링카. 마침내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 마링카는 위험하고 아찔한 모험을 시작한다.

죽음과 상실을 예민하고 섬세하게 다루는 이 책은 죽음을 여행의 관점으로 해석해 삶의 정체성과 소속감에 대해 되짚어보게 한다.

저자는 책에 실린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기쁨과 슬픔, 외로울 때와 교류할 때, 자랑스러운 순간과 후회하는 순간으로 꽉 찬 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메시지죠. 산다는 건 이 전부를 경험한다는 의미예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일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 일이 정말로 가슴을 찢어놓지는 못해요. 더 밝은 미래라는 희망이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그 희망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발견할지도 몰라요.”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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