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인 죽이고 살리는 10만 원나아가 도시의 생사 가르기도공직선거법 엄중함 우선돼야

10만 원, 누구에게는 행운이 됐고 누구에게는 저주가 됐다.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피고인들의 벌금 형량에 따른 당선 무효 여부가 10만 원으로 판가름 나는 사건이 대구에서 연달아 일어나고 있어서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지난 17일 선거법 위반 항소심에서 벌금 90만 원을 선고받아 시장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대구고법 제1형사부는 “정치적 중립과 선거 공정성을 유지해야 하는 시장 신분으로 2건의 범죄를 저지른 점은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꾸짖고는 “하지만 상대 후보와 상당한 표 차이로 당선됐고 직무수행 지지도가 높고 스스로 시민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다짐한 점을 종합하면 위반 정도가 당선을 무효로 할 정도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법원 앞에서 피고인을 법대로 처벌해 달라는 플래카드도 보고 시민들의 목소리도 들었다”며 “시장직을 수행하면서 지지하지 않은 시민들의 목소리도 들어 달라”는 경고도 빠뜨리지 않았다. 항소심이 검찰의 항소 이유를 모두 수용한 만큼 대법원의 최종심은 필요 없어졌다.
100만 원이면 시장직을 잃게 되는 상황에서 법원이 내린 벌금 90만 원은 의미가 무겁고 깊다. 10만 원은 한 가족 외식비 정도다. 그걸로 8조 원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250만 대구시민의 수장 직위를 판가름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10만 원 차의 판결을 얻어내느라 권 시장이 그동안 투자한 물적 심적 시간적 재화를 따져보면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재판부도 이 점 때문에 고심했을 것이다. 권 시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행위가 법률상 최고 3년 이하의 징역이나 6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고 100만 원 이상을 선고받으면 당선을 무효로 하도록 한 것은 그 죄의 무게가 그만큼 무겁기 때문이다. 사회적 통념에 비춰볼 때 100만 원의 벌금으로 당선을 무효로 한 법 규정은 선출직에 대한 국민의 엄격한 도덕성 요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대구지법 형사11부가 지난 11일 6ㆍ13지방선거 대구시장 후보 경선 과정에서 한국당 이재만 전 최고위원을 위해 착신 유선전화를 설치하여 불법 여론조사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서호영 김병태 대구시의원과 김태겸 황종옥 대구 동구의회의원, 신경희 북구의회 의원 등 5명에게 공직선거법 위반죄로 벌금 100만 원씩을 선고한 사건과 비교해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이들은 형이 확정되면 당선무효가 된다. 재판부는 “여론을 인위적으로 왜곡해 죄질이 좋지 않고 공천받아 당선돼 지방의원 자질이 있는지도 의문이 생겨 당선무효형을 선고했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권 시장의 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주지 않았다며 1심 재판부와 같은 면죄부를 줬다. 대구시민에게 재선거의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는 검찰과 재판부의 눈물겨운 배려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직무수행 지지도가 높은 점도 반영했고 엄벌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들었다고 밝혔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 사정을 권 시장을 앞장세워 돌파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재판정을 나서는 권 시장은 애써 표정을 관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음을 “이제 시정에 전념하겠다”는 멘트로 대신했다. 당선 후 7개월여 피고인 시장으로서 가슴 졸였을 것이며 직무수행 지지도를 얻기 위한 행보는 또 얼마나 조심스럽고 한편 과장되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지방의원의 경우 아직 항소심이 남아 있으니 단언할 수는 없지만 현재 판결로는 대구시장의 시장직 유지와 지방의원들의 당선무효를 가른 것은 단돈 10만 원이다. 그렇다고 해도 벌금 150만 원 구형과 90만 원 선고, 100만 원 선고는 국민감정에 마치 한 편의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가볍게 비칠까 두렵다. 검찰과 법원도 이런 감정을 읽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는 10만 원이 행운이 됐고 누구에게는 저주가 됐으니까.
그러니 공직선거법의 엄중함을 후보가 먼저 인식해야 할 것이고 유권자도 선거의 중요함과 한 표의 신성함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10만 원은 한 명의 당선인을 죽이고 살리는 데서 나아가 한 도시를 죽이기도 살리기도 한다. 언론인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