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현대사 최전선에서 한국적 ‘자주인 사상’ 자율공동체 꿈꾸다

<75> 아나키스트 철학자 하기락

2002년 6월 고향 안의면 안의공원에서 동료ㆍ후학 130명이 참가한 가운데 학덕비 제막식이 열렸다. 학덕비에는 “한 손에 실존적 자유의 깃발을, 다른 손에 인간적 해방의 깃발을 높이 쳐들고….”라는 제자 김주완 교수(경산대)가 스승 하기락을 기리는 시가 새겨져 있다. 사진은 하 교수의 4남 하영선(전 대구대 식품공학과 교수) 부부.
하기락은 영어ㆍ일어ㆍ독일어ㆍ한문에 능통했다. 그는 1980년대 경북대 대학원 과정에 개설된 동양철학 강좌에서 한문 원문으로 ‘금강삼매경론’, ‘대승기신론소’, ‘근사록’ 등을 강의했다.

그는 1980년대 후반 독일 철학자 하르트만 읽기 모임을 만들어 정확한 번역과 해설로 후학들의 이해를 도왔다.

그는 80세 때인 1992년 ‘조선철학사’를 발간했다. 서양철학자인 그가 한국역사를 1만 년까지 끌어올려 상고시대부터 근세까지 철학을 기(氣)의 관점에서 풀어쓴 것이다.

1997년 2월3일 그는 대구 만촌동 집을 나서다 쓰러졌다. 국제평화협회지 ‘평협’을 돌리려 집을 나서던 순간이었다. 그는 경북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을 거뒀다.

그는 언제나 약자 편이었다. 누구에게나 겸손했고, 평생을 청빈했다. 광복 후 한국현대사의 주요 고비마다 그가 있었다. 그는 한국 현대철학 1세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였으나 학술원 회원도 되지 못했고 훈장이나 상조차 받은 적이 없다. 늘 권력의 반대편에 서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떠난 후 후학들은 그를 전설처럼 말하고 있다.

이송하 전 연합뉴스 기자

• 1912년 1월26일 경남 함양군 안의면 출생 • 1922년 안의공립보통학교 입학 • 1927년 경성 제2고보(현 경복고) 입학 • 1929년 광주학생운동 시위 주동으로 퇴학 • 1934년 최재전과 결혼 • 1935년 일본 밀항/일본 동경 상지대 예과 입학 • 1937년 와세다대 철학과 입학 • 1939년 12월 창씨개명 비판, 3개월 구류처분 • 1941년 대학 졸업/황해도 재령상고 교사 • 1946년 부산 ‘자유민보’ 주필 • 1946년 4월 안의 전국아나키스트대회 개최 • 1947~52년 옛 대구대 교수 • 1951년 안의고교 설립 • 1952~68년 2월 경북대 철학과 교수 • 1963년 한국칸트학회 설립 주도 • 1973년 민주통일당 정책위의장 제9대 국회의원 선거 낙선 • 1987년 제3회 전국아나키스트대회 대회장 • 1988년 서울서 세계 아나키스트 대표자 대회 • 1992년 12월 조선철학사 발간 • 1997년 2월3일 별세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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