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텅 빈 학교운동장에 나가/ 철봉에 매달려본다/ 너는 너를/ 있는 힘껏 당겨본 적이 있는가/ 끌려오지 않는 너를 잡고/ 스스로의 힘으로/ 끌려가본 적이 있는가/ 당기면 당길수록 너는 가만히 있고/ 오늘도 힘이 부쳐/ 내가 너에게/ 부들부들 떨면서 가는 길/ 허공 중 디딜 계단도 없이/ 너에게 매달려 목을 걸고/ 핏발 선 너의 너머 힘들게 한번/ 넘겨다본 적이 있는가
- 시집『구구』 (문학동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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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만에 다른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처럼 동네 놀이터 철봉에 매달려 보았다. 철봉도 내 몸도 꿈쩍하지 않았다. 한번 당겨볼 마음이야 왜 먹지 않았을까만 요지부동 매달려 있기조차 힘이 들어 그만 내려오고 말았다. 내 턱걸이 실력은 중학교 입시 체력장 때 기록한 9개가 최대치였다. 이후 중학생 시절 유도를 할 때에도 군에서도 기록을 갈아치우기는커녕 나날이 형편이 줄어들었다. 철봉 턱걸이 운동은 팔 힘뿐만 아니라 끌어당길 때 등힘이 함께 작용하고, 자신의 체중을 들어올려야 하므로 몸을 가볍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몸무게를 모두 끌어올려야 턱걸이 한 개를 간신히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중을 유지하면서 꾸준히 상체를 단련하지 않으면 한 번 하기도 버거운 철봉 턱걸이다. 철봉을 잘하기 위해서는 자주 철봉에 매달리며 철봉과 친숙해져야 함은 물론이다. 어쩌다 철봉에 손바닥을 말아 쥐고서 내 몸이 딸려 올라가 주기를 바란다면 언감생심 그런 망발이 없다. 엎드려 팔굽혀펴기는 집에서 몇십 개씩 하고 있지만 한심한 내 몸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버킷리스트에다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 한 번 하는 것을 소원이라 적는다 해도 못 해낼 것만 같았다. 이런 턱걸이를 사랑의 운동법칙에다 비유하다니 나는 일찌감치 텄다. ‘너는 너를 있는 힘껏 당겨본 적이 있는가’라는 물음 앞에서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그렇다고 내 생애에 사지 힘껏 내 몸을 부추기는 용기를 한번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참으로 좋아했고 그리워하며 매달렸던 사랑이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과 예술적 취향을 존중했으며 귀엽고 지적인 모습에 반했다. 수학 선생이면서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고, 방학 때면 혼자 해외로 즐겨 여행을 떠나곤 했다. 집에는 성모상이 있었고 술을 즐겼으나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다. 혼자 사는 그녀의 아파트에서 술을 마시다가 느닷없이 10분간 영어로 대화를 하자는 참으로 생뚱맞고 기분 나쁜 깜짝 제의에 최선을 다해 응한 일도 있었다. 그녀로서는 필요했을 자질 테스트였으리라.
아마 나는 그 부문에서 상당한 점수를 잃었으리라. 그녀의 집에서 밤을 지새울 때도 십자가 아래서 ‘못된 짓’을 원치 않았던 그녀의 뜻을 고스란히 지켜주었다. 처음 성당에 가서 눈을 감아본 것도 그녀와 함께였다. 미래를 같이 이야기했으며 ‘당기면 당길수록’ 철봉처럼 가만히 있지 않고 조금씩 딸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사랑은 실패했다. 자초지종의 사연 가운데는 내 방종이 있었고, 그녀 하나만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사랑하지 못했던 내 미숙 탓임을 인정치 않을 수 없다. 온 힘을 다해 화살을 쏘더라도 과녁이 잘못되면 허탕이지만, 꿈과 목표가 분명하면 숨이 멎을 만치 부들부들 떨면서 가는 길이라야 했다. 그게 어디 사랑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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