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정치후원금, 뻔뻔하다

‘10만 원까지 소득공제 된다. 그러니 정치후원금 기부하고 세금공제 받자.’
연말정산 시즌이 되면서 선거관리위원회가 집중적으로 홍보하는 정치후원금 슬로건이다. 덩달아 국회의원들도 후원금 모금을 은근히 권유한다. 국민들이 직접 뽑은 대표들이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자금을 필요하지만 그것이 정치인들의 월급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정치인의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정치후원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돈에 휘둘리지 않고 정치하도록 후원금을 기부하자는 주장은 작금의 국회의원 행태를 보면 참으로 낯 두꺼운 명분이다.
지난해 말 국회는 2019년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법정기한인 2일보다 6일이나 지난 8일 새벽에야 지각 처리했다. 그것도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야 3당을 패싱하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만이 합의해 처리했다.
여당과 거대 야당이 합의하는 동안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선거제 개혁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예산안은 예결위에서 예산심사소위를 거쳐 다시 법적 근거도 없는 ‘소소위’로 넘겨졌다. 예결위원장과 여야 예결위 간사가 참여하는 소소위는 비공개로 진행됐고 물론 기록도 남기지 않는다. 국회가 예산심사 기한을 넘겨가며 일부러 딴전을 피우다가 막판 시한에 쫓겨 소소위로 넘겨버리고는 쪽지예산을 통해 지역구 민원을 챙기려 했다는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더구나 내년에는 총선이 있으니까 국회의원들이 힘자랑을 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더욱 기막힌 것은 그 난리통에 민주당과 한국당은 국회의원의 세비인상안도 슬그머니 끼워 넣어 통과시켜버린 것이다. 참으로 신통한 재주다. 공무원 공통보수 증가율 1.8%를 적용했다지만 셀프 인상한 것이다. 세비는 지난해 1억290만 원보다 182만 원 증가한 1억472만 원이 됐다. 여기에다 입법활동비, 차량유지 수당 등으로 4천804만 원은 별도로 받는다. 연봉 1억5천276만 원짜리 고액 공무원인 셈이다.
평소에도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의 여론은 껄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비를 인상하자 국회의원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고 심지어 세비를 최저임금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는 청와대 청원까지 올라오기도 했다. 국회의원 세비 인상을 자제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빗발치자 3권분립 원칙에 따라 청와대가 국회의원 월급을 간섭할 수 없으나 국회는 국민의 원성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라고 간접 경고했다. 바른미래당 등 야 3당은 인상분을 모두 기부하는 등 인상분을 처리키로 했으나 거대 양당은 아직 결정하지 않고 있다.
정말 정책을 결정하는 데 그렇게 돈이 많이 들어가고 그 돈이 필요해서 정치후원금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최저임금 문제로 많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최악의 상황을 치닫고 있는데 연봉 1억5천만 원짜리 고액 봉급자가 한가하게 정치후원금을 이야기하는 것은 국민을 아예 물로 보는 꼴이다. 오히려 국회의원의 세비 총액을 동결하고 국회의원 숫자를 늘려 국회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희석시키라고 주장하고 싶다. 그래서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예산안 늦장처리도 없애고 소소위에 넘겨 쪽지예산으로 지역구를 챙기는 편법도 없애야 할 것이다.
마침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산하 ‘선거제 개혁 자문위원회’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국회의원 정수를 현행보다 60명 늘리는 권고안을 마련해 국회에 넘겼다. 국회의원의 특권을 줄이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국회상을 정립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다.
정치에는 자금이 필요하고 그것이 정치부패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치후원금을 주는 제도를 만들었지만 공무원 재산공개 때 보면 대부분의 국회의원은 재산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니 투명하고 깨끗한 정치후원금이라지만 사무실 운영비는 물론 각종 혜택에다 해외여행까지 지원받는 국회의원에게 정치후원금까지 모아 주자는 것은 국민 정서를 배반하는 야합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답게 도덕적으로도 국민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돈 문제일 때는 더욱 그렇다. 국회의원이 재산증식의 수단이 되어서야 제대로 된 나라라고 할 수 있겠나.

이경우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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