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환칼럼니스트

국민의 주권 행사는 선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선거는 직접, 비밀, 보통, 평등 등 선거의 4대 원칙이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이 원칙에 충실한 것만으로 필요충분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없다.
그 외에도 적합한 선거제도의 채택과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 국민의 수준, 인구의 규모, 국토의 크기, 권력구조나 상ㆍ하원제와 같은 정치 환경 등이 어떠냐에 따라 몸에 맞는 옷이 달라진다.
최근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벤치마킹하자는 시도인 듯하다.
독일식 선거제도는 조금 난해 하지만 합리적인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독일식 선거제도는 전체 의석수를 정당별 득표수 비례로 각 정당에 배정한 다음, 각 정당에 배정된 의석수에서 정당별 지역구 당선자수를 뺀 나머지를 그 정당의 권역별 비례대표 의석으로 확정하는 것이다.
어떤 지역구에 배정된 의석수보다 지역구 당선자수가 더 많이 나와 초과의석이 발생할 경우, 의석을 보정하는 점은 눈여겨봐야 할 매력 포인트다.
독일식 선거제도의 최대 장점은 보통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정당별 득표수 비례로 각 정당에 의석을 배분할 수 있어 민의를 충실히 반영한다는 점이다.
둘째 사표가 방지된다는 점이다. 소수정당이 의회에 진출하기 용이한 까닭에 다당제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다양한 국민의 의사를 대변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 선거제도는 일종의 혼합형 비례대표제다. 비례대표는 득표수 비례로 정당별로 배분된다.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이다. 비례대표수가 적어 정당득표수와 실제의석수의 불비례성이 크다. 독일 제도의 벤치마킹이 논의되는 이유다.
독일은 의원내각제 연방국가로 정치 환경, 국민 의식, 역사적 배경 등이 우리와 많이 다르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대통령제하에서 선진국 문턱에 웅크리고 있는, 불같은 우리나라와 오래된 선진국으로 뼛속까지 합리적인 국민성을 가진 내각제 국가인, 느긋한 독일은 정치적 환경이 많이 다르다.
양원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대통령제와 어울리는 양당제를 유도하는 선거제도가 우리에게 유리할 수도 있다.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며 느리게 갈 시기인지도 선택해야 할 문제다.
대표를 선출하는 문제와 정당을 선택하는 문제를 별개의 문제로 볼 수도 있다. 인물 중심으로 대표를 뽑아 포괄적 위임을 한다면 의석을 꼭 정당별 득표수 비례성에 맞춰야 하는지 의문이다. 의석수가 왜 정당별 득표수에 비례성을 가져야 하는가? 소수표도 대표 선출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소수표를 사표로 인식하는 시각도 한번 따져 볼 일이다.
소수표를 존중한다면 석패율제가 오히려 나을 수 있다. 모든 의정활동이 정당 강령이나 당론에 따라 심의하고 의결하는 것은 아니다. 당론에 따라 하는 의정활동과 개인 소신에 맡겨지는 의정활동을 나누어 보고, 그 비율에 맞추어 비례대표 의석과 지역구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방법도 검토해 볼 만하다.
지방의원의 경우 정당의 당론과 무관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비례대표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지방의원선거에서 정당 공천을 배제하자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비례대표 후보자 선정이 합리적이지 못하면 비례대표제도 자체가 뿌리째 흔들리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비례대표를 없애자는 소수의견도 들린다. 합리적 운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도는 ‘개 발의 편자’다.
선거제도 개혁은 디테일로 들어가면 더욱 복잡하다.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정당들의 타협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해결하는 것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다. 관련 분야 학자들과 실무자들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개혁 시안을 마련한 다음, 그 시안의 수용여부를 정치적 타협에 의하여 결정하는 방법이 현실적이다.
의석수를 늘리는 데 대한 국민의 반발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극히 예민한 사안을 정치권에서 당사자들끼리 미주알고주알 논의하는 방법은 매우 소모적이다.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예민한 사안에 대해 정치적 개입을 우회하는 것도 고도의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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