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전쟁고아·소외이웃 돌보며 지역 문화예술의 초석 다져

<74> 포항의 인간 상록수 이명석

포항 수도산 덕수공원 이명석 선생 문화공덕비. 비 전면에 새겨진 옛 포항시민의 노래는 1971년 포항문화원장을 지낸 이명석 선생이 작사하고 아들인 이진우 전 국회 의원이 작곡했다.
재생의 거룩하고 뜻깊은 애린정신은 지난 1998년 2월28일 포항지역 문인들이 중심이 돼 생전에 자주 거닐던 수도산 덕수공원에 세운 재생 이명석 선생 문화공덕비 비문에서 잘 드러난다. 문화공덕비 앞 잔디밭에서는 해마다 재생의 공덕을 기리는 추모식이 후학과 시민들에 의해 열린다.

이에 때맞춰 그의 아호를 본뜬 재생백일장이 함께 열려 지역 문인과 문학을 지망하는 청소년들의 참여가 줄 잇고 있다. 이러한 행사는 어렵고 힘든 시절 지역사회에 홀로 일궈놓은 재생의 삶과 발자취에 대해 깊이 되새겨보는 뜻깊은 시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부도 재생이 포항지역에 끼친 위대한 공로를 인정, ‘인간 상록수 훈장’을 수여했다. 곁에서 내조한 부인 도우술 여사는 ‘장한 어머니상’을 받았다.

재생은 지난 1979년 9월 향년 76세를 일기로 미국 시카고 인근 록퍼드에 있는 차남 집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 그동안 유해가 이국땅 미국에 안치됐다가 31년 만인 지난 2010년 10월2일 경북 포항 덕수공원에 재안장됐다. 재생은 슬하에 진우(작고), 매리(82), 태우(79), 대공(76) 등 3남 1녀를 두었다.

◆막내아들이 문화·예술 열정과 이웃사랑 이어

그는 자녀들에게 자신의 문화사업에 일절 손대지 못하게 할 정도로 청렴결백했다고 한다. 그러나 피는 속이지 못한다는 말처럼 아들 대공씨는 부친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열정과 이웃사랑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대공씨는 사재로 1998년 6월 보건복지부 인가를 받아 애린문화복지재단을 설립, 지금까지 가난한 이웃은 물론 불우한 청소년 장학금 전달 등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특히 포항지역 문화발전에 공이 큰 인물을 선발해 ‘애린문화상’을 수여하고 해마다 재생백일장에는 많은 성금을 내놓는 등 결코 쉽지 않은 봉사를 해오고 있다.

‘애린’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란 뜻으로 재생이 지었는데 그대로 복지재단의 이름이 됐다. 대공씨는 포스코 홍보실장, 포항공대 건설본부장, 포스코교육재단 이사장을 지냈으며 2011년 11월부터 3년간 제7대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오늘날 포항지역을 중심으로 지역사회 후학들과 시민들은 재생이 남기고 간 고귀한 뜻을 기억하며 따르려고 노력한다. 재생이 남긴 고귀한 뜻은 지금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도시,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도시, 전통정신이 살아 있는 도시”로 포항 시민헌장에 오롯이 담겨 있다.

박이득 전 포항예총 회장은 젊은 시절 재생을 따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예술과 문학을 논했다.

박 전 회장은 재생의 삶을 “남에게 봉사하는 생활 타자에게 나눔의 생활 문화를 애호하는 정신,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 투명한 이성을 실천하는 행동,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함을 온 정신 온몸으로 보여주고 가신 어른”이라며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다.김상조 언론인

연보

• 1904년 영덕 강구면 삼사리 출생• 1924년 대구 교남학원(현 대륜고) 중•고등과 수료• 1925~1927년 일본 관서미술원• 1928년 도우술과 결혼• 1933년 영덕에서 포항으로 이주• 1939년 포항 기독교 신사참배 행사 무산시킴• 1946년 포항문화협회 조직• 1953년 선린복지재단 정식 인가 등록• 1958년 선린애육원 제4대 법인 이사장• 1961년 포항문인협회 창립• 1963년 한국예총 포항지부장• 1965년 포항문화원 원장• 1966년 ‘포항개항제’ 개최• 1979년 미국에서 76세를 일기로 소천• 1988년 이명석 선생 문화공덕비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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