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 1929년 4월 2일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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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르는 신에게 바치는 송가인 ‘기탄잘리’ 등이 세계로 알려져 1913년 동양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조국 인도와 비슷한 처지의 ‘코리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각별했다고 전해지는데, 사실 그 관심의 수준은 확인되지 않으며 다만 ‘동방의 등불’이란 시 하나로 모든 걸 유추할 뿐이다.
‘동방의 등불’은 그가 1929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당시 동아일보 도쿄지국장이 한국에도 방문해줄 것을 요청하자 그에 응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대신 한국인에게 보낸 격려의 시로 알려져 있다.
그해 4월 2일자 동아일보에 시를 받게 된 경위와 함께 주요한의 번역본이 실려 실의에 빠진 우리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음은 물론이다. 지금은 비록 일제강점으로 그 등불이 꺼져있어 동방의 한쪽이 어둡지만 언젠가는 등불이 다시 밝혀질 날이 오리라는 확신을 주며 용기를 북돋우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당시 노벨상 수상시인이라는 명망에 편승해 인사치레로 받은 글을 지나치게 부풀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 시가 너무 짧아 아쉽게 생각해서인지 주요한은 번역본에서 이 뒤에 ‘기탄자리’의 35번째 시를 덧붙여 유통시켰다.
그 시는 타고르가 영국에 항거하는 인도인을 위해 쓴 것으로 우리의 처지도 그와 비슷하여 자연스럽게 끌어들인 것 같다. 하지만 전해지고 있는 긴 시는 분명히 짜깁기한 것이며, 특히 ‘자유의 천국으로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라’고 한 마지막 구절의 ‘코리아’는 원전에도 없는 창작이며 각색이었다.
솔직히 위 번역된 시의 내용도 원문이라고 알려진 영문과 비교하면 다소 왜곡되고 임의 해석되어진 부분이 없지 않다. 이를테면 타고르의 등불은 아시아 전체를 하나의 등불로 본 것인데, 번역에선 그 등불을 조선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당시 서구와 일본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질 만큼 잘 나가는 타고르의 한 마디는 우리에게 매우 큰 의미였을 것이며, 그런 그에게 기대고 싶은 생각도 들었으리라. 따라서 시대적 필요에 의한 절실함으로 다소 과장되게 의역된 부분도 분명 있으리라. 어쨌거나 인류의 스승이라 불리는 타고르는 이 짧은 시로 인해 우리에겐 친숙하다.
이 시의 예언적 내용인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을 오랫동안 설렘으로 기다려왔다. 나는 그 첫 번째 등불을 2016년 위대한 국민에 의해 민주주의의 승리를 이끌어낸 그 겨울의 촛불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그 쟁취가 우리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되리라는 믿음을 의심하는 국민은 많지 않았다. 탄핵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확연히 달라져야한다는 당위로 받아들였다. 그 힘으로 세운 문재인 정부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국민이 주인인 정부’, ‘더불어 잘사는 경제’,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등 국정목표는 대체로 반듯했지만 가는 길이 순탄치는 않다. 실수도 있고 저항도 만만찮다. 포용성장만 해도 기득권층의 이해와 양보가 필수인데, 부정적 여론이 꽤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그럼에도 ‘등불’은 꼭 살려서 올 한해를 건너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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