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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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잠언시가 크게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덕분에 류시화가 기획해 내놓은 책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선물치고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도 누군가로부터 받은 잠언시집이 두어 권 있다. 4할쯤이나 읽었을까, 가슴까지는 말할 나위 없고 머리에서 받아들이기에도 너무나 벅찬 내용들이었다. 내가 읽은 분량만 잘 소화하고 실천했더라도 아마 나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리라. 아니 군자의 반열에 올랐거나 현인을 코스프레해 가면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 숱한 잠언의 가르침대로 지혜롭게 살아가기란 얼마나 불가능한 노릇인가. 그럼에도 가끔 소화하기 버거운 잠언들을 펼쳐보고서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 지리멸렬 혼란한 내 정신에도 일시적 처방이 되어주길 기대하며 이 잠언시를 불러들인다. 한 사람의 어른이 되는 길은 이토록 지난하며 어른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요구되는 것들이 많다. ‘정글북’의 작가이며 시인인 키플링의 조곤조곤 친절하게 들려주는 지혜의 말씀에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이 시는 재작년 도종환 문체부장관이 취임사에서 인용한 바 있다. 공직생활에 임하면서 두고두고 가슴에 새길만한 내용이다. 이 시가 다시 생각난 건 최근 두 전직 공무원의 내부고발 파장 때문이다. 한 사람은 동기에서부터 내용까지 누가 보더라도 공익성 제보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다른 한 사람의 경우는 아리송한 구석이 너무 많다. 조직파괴자로 몰아붙일 일은 아니지만 정말 국익과 나라의 미래를 위한 우국의 마음만으로 휘슬을 불었던 걸까. 내용의 부실은 차치하더라도 과연 ‘한 사람의 어른이’ 할 수 있는 용기였을까.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고 안타까운 마음이 떠나지 않는다. 이러한 일을 빌미 삼아 정쟁의 불쏘시개로 활용해 판을 뒤집어보겠다는 제1야당의 속셈이 쉽게 간파되는 것도, 이중 잣대로 대응하며 과한 방어기제를 가동하는 여당의 처사도 모두 서글픈 노릇이다. 우리는 싫든 좋든 매일매일 저급한 리얼리티 쇼를 보고 있다. 정치의 일상화를 촉진시키는 언론 또한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만일’ 그 젊은이가 매우 엄격한 도덕성으로 자기 스스로를 진정 ‘신뢰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를 충분히 보호하고 다독여주어야 마땅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