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라라, 나의 멘티 재훈아

▲ ‘2018 교육기부 우수사례 공모전’ 체험수기 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대구침산초 학부모 김남주씨.
▲ ‘2018 교육기부 우수사례 공모전’ 체험수기 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대구침산초 학부모 김남주씨.

내년에 고 3이 되는 큰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큰 딸 선민이가 9살 되던 해 둘째 예진이를 낳았다. 새 가족이 생긴 기쁨도 컸지만 어린 갓난아이를 키우며 초등학교 2학년 아이를 돌보는 일은 터울이 많아 전혀 다른 형태의 육아를 동시에 경험했던 만만치 않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두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고 나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갈 무렵 큰 아이 담임 선생님을 찾아 학교를 방문할 일이 있었다. 웃는 모습이 화사하셨던 여선생님이셨다. 늦게 동생을 보게 된 선민이의 심경이나 주변의 변화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 학교생활은 잘 하고 있는지 선생님께 궁금한 여러 가지를 여쭈어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나의 걱정과는 달리 선민이는 학교생활을 즐겁게 그리고 동생이 생긴 일을 자랑스러워 한다는 이야기를 선생님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두 자녀를 키우신 선생님이셔서 자식 키우는 이야기며 여러 가지 도움 되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나도 아이도 그렇게 적응을 하며 지내던 어느 날, 큰 애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몇가지 부탁을 드리고자 전화를 하셨다면서 말씀을 시작하셨다. 선민이 반 친구 중에 편부 가정의 한 친구가 있는데 마침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고 선민어머니만 허락해 주시면 그 아이의 어머니 멘토가 되어 주십사 하는 부탁의 말씀이셨다.
지난번 상담 때 나눈 이야기들을 토대로 선생님도 신중히 고민하신 끝에 내린 부탁이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셨다.
일주일에 2~3회 정도 그 친구가 우리 집으로 방문하면 동화책 읽기 등 선민이가 가정에서 엄마와 하는 활동들을 같이 하고 집으로 돌려보내면 된다고 하셨다. 특별한 것 없는 일이었지만, 어린 아기도 있고 고민이 컸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사랑과 가정의 기운을 나누어 주고자 어린 아기가 있는 선민이 어머니를 선택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어머니 멘토를 해보겠다고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다.
학교를 마치고 선민이가 귀가를 한 후 30분 정도 지났을 무렵 남자아기가 초인종을 눌렀다. 선생님께 소개를 받은 멘티 재훈이었다. 어머니 멘토를 결정한 후 선민이에게 같은 반 친구 재훈에 대해 물어 봤더니 선생님께도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 일도 많고 친구들과 다툴 때가 많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의 자신감이 더 떨어졌고 부담감은 더 커졌다.
재훈이와 처음 인사를 나누고 집안으로 들어와 손을 씻고 주스를 먼저 한잔 마시게 하고 우리 집에 대한 소개를 시작으로 아이의 마음을 우선 편하게 해 주기 위해 노력을 했다. 재훈이는 다른 아이들과 다름없는 그냥 아이였다. 조금씩 긴장도 풀리는 것 같았고 무엇보다도 어린 동생에게 가장 먼저 마음을 여는 것이 보였다.
아기의 조그마한 손을 조심스레 만져보며 신기해 했고 아기에게 이야기할 때는 더욱 조심성 있게 고운 솜털을 대하듯 예쁜 말투로 이야기를 했다. 동화책도 읽고 선민이와 같이 종이접기도 하고 블록놀이도 하며 2시간에서 3시간가량 함께 보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횟수가 더할수록 점점 편안하게 찾아왔고 같이 있는 시간도 큰 무리 없이 함께 잘 지내 주었다.
하루는 큰애가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 재훈이가 오늘 교실에서 선민이네 집이 제일 부자 집이라고 친구들 앞에서 발표했어. 선생님께서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했더니 선민이네 집은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고 아기도 있어서라고 했어.”
우리 집을 자랑해 준 재훈이가 고맙기도 했지만 마음이 너무 짠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어머니 멘토를 하던 기간 그 사이 현장 체험학습이 있어서 재훈이에게 선민이와 똑같은 도시락을 준비해 주기로 마음을 먹고 재훈이 아버지께 따로 도시락을 준비하지 말라고 등교 때 전해 주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동안 재훈이는 김밥집에서 도시락을 사서 매번 체험학습을 갔다고 들었다.
다른 날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김밥을 사려고 부엌에 나간 시간은 오전 5시 쯤 창밖이 아직 어둑어둑한 시간 휴대 전화의 벨이 울렸다.
재훈이가 빨리 도시락이 보고 싶어 도시락을 직접 가지러 오겠다는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전화를 끊고 정성을 담아 열심히 도시락을 두 개를 만들었다.
다시 내가 재훈이네로 전화를 걸어 도시락을 받으러 오라고 했더니 얼른 달려와 도시락을 받아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등교를 했다.
재훈이의 설레하던 그때의 그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냥 평범한 일상이 이 아이게는 너무나 간절한 순간들이었다는 사실이 마음을 너무나 안타깝게 했다.
그렇게 정해진 멘토 수업 날이 되면 빠짐없이 우리 집을 찾아준 재훈이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즐겁고 재미있게 잘 마무리를 하였다. 그 후 새어머니가 오셨다는 소식도 들었고 학년이 바뀌어서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는 소식도 들었다.
재훈이에게는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나 자신도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음에 감사하며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나누는 그런 세상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얼마 전 사람이 많은 한 식당에서 “선민이 아줌마!”라고 부르는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고등학생이 된 재훈이가 그 많은 사람 속에서 나를 알아보고 부르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과 재훈이네 가족은 서로 반가운 감사의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안녕과 행복을 빌어주며 헤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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