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에게 비전을 보여주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정치인들이옛 영상만 리플레이하는게 답답하다

별이 떨어졌다. 중원을 탈환해 삼국을 통일하겠다는 원을 세우고 황제 유선에게 출사표를 던진 공명의 시운이 다한 것이다. 숙적 제갈공명이 죽었다고 생각했던 위나라 사마중달은 군사를 다그쳐 달아나는 촉군을 추격한다. 그런데 산모퉁이를 돌자 갑자기 촉군이 기수를 돌려 공격해 오는 것이다. 더구나 수레에는 부채를 든 공명이 떡하니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혼비백산한 사마중달이 달아났음은 물론이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았다’라고 알려진 삼국지의 한 대목이다.
연산군 4년. 성종실록 편찬 책임을 맡은 이극돈은 사관 김일손이 자신의 과거 비정을 사초에 기록한 사실을 발견한다. 김일손은 이미 사직하고 고향 청도에 내려가 학문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극돈은 자식뻘 되는 김일손에게 고쳐달라고 했으나 거절당한다. 앙심을 품은 그는 사림세력에 불만을 가진 유자광 등 훈구파 세력들을 규합하고 사초에 왕실을 비방하는 내용을 찾아내 연산군에게 고하게 된다.
조의제문, 옛날 초나라 의제가 항우에게 살해된 것을 조문하는 글이다. “김종직이 세조대왕을 항우에 비유하고 의제는 노산군(단종)에 비유해서 쓴 글입니다. 세조께서 노산군을 죽였다고 직접 쓸 수 없으니까 이런 식으로 세조대왕을 비난한 것입니다.” 연산군의 눈이 뒤집혀졌다. 사초를 기록한 김일손과 권오복 권경유가 능지처참에 처해졌고 이미 땅에 묻힌 김종직은 시체가 허리를 잘렸다. 무오사화로 불리는 이 사건 이후 연산군은 포악무비한 폭군이 된다.
그로부터 6년 뒤, 방탕과 무능으로 국고를 탕진하고 민생을 궁핍으로 몰아넣은 연산군은 또다시 피바람을 일으킨다. 임사홍 등이 자신의 생모 윤씨 사건을 들추어낸 것이다. 폐비가 되고 끝내 사약을 받은 어머니의 죽음에 관련된 사람들이 아직까지 자신의 주위에 포진하고 있음을 알고 그들을 모두 도륙한 것이다. 7개월여에 걸쳐 벌어진 피의 제전에는 대신 10여 명이 참형 당하고 한명회 남효온 등 12명이 부관참시 됐다. 역사가 당쟁이라 기록하는 권력을 둘러싼 정치권의 대결 결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잊혀질만하면 주변 사람들에 의해 되살아난다. 윤장현 전 광주시장의 노 전 대통령 혼외자식 논란에 이어 노 전 대통령의 호위무사로 알려진 김정호 민주당 의원이 등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민주화 시위로 구속됐다 변호인과 의뢰인으로 만난 김 의원은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에는 같이 봉하로 내려가서는 생태농업 책임을 맡았다. 그는 지난 6월 김경수 의원이 경남도지사로 출마하자 그 자리의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는 공항에서 보안요원이 신분증을 투명케이스에서 빼내 보여 달라는 요구를 ‘근거’를 요구하며 거절했다. ‘규정’을 내세우는 공항 보안요원에게 책임자를 불러오라 호통치고 얼굴 사진을 찍었다. 보안요원이 쓴 경위서가 언론에 나돌아다닌다. 도대체 어디에 쓰려고 상반신 사진을 찍고 무엇을 잘못해서 보안요원은 경위서를 썼을까. 누가 경위서를 요구한 것일까. 국회의원에게 신분증을 요구한 불경죄가 규정을 적용한 업무수칙보다 큰 잘못인가. 김포공항이 피감기관인 국회 국토교통위원을 보안요원 따위가 몰라봤으니 근무 똑바로 안 한 것일까. 초선으로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인 김 의원에게 야당에서 국토위를 사퇴하라고 몰아붙이는 것도 전혀 뜬금없는 주장이 아닐 것이다.
어쨌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정치인들이 자꾸 죽은 사람을 불러내는 것 같아 유쾌하지 않다. 국민들에게 비전을 보여주고 그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이 지도자일 텐데, 어찌 옛날 영상만 리플레이하는지 답답해서 하는 말이다.
김 의원만 하더라도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가 인정하든 말든 그가 소리를 크게 낼수록 특권 없는 사회를 주창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은 정치인 김정호의 업보이자 숙명이기 때문이다. 그가 서둘러 사과 기자회견을 한 것도 그런 현실을 인정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그에게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그다음 문제이고.

이경우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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