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이다. 2018년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10여 전쯤만 해도 12월 초만 되면 성탄절이 아직 멀었지만 길거리에 캐럴이 들리고 연말이라는 분위기를 흠뻑 느낄 수 있었다. 왠지 모르게 연말이라는 시간은 지나간 것에 대한 추억과 다가올 시간에 대한 기대가 교차하는 특별한 의미를 가졌고, 서로의 안부와 덕담을 나누었던 관계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저작권법 때문인지 캐럴도 들리지 않고, 과거와 같은 연말의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과거보다 각종 ‘망년회’와 술자리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들리는 캐럴과 건하게 한잔한 직장인들이 가족들에게 갖다 줄 호떡과 붕어빵을 사 들고 발걸음을 재촉하던 그런 모습들이 사라진 것 같다. 연말이라고 해서 우리의 일상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왠지 20세기의 세밑이 더 정감 있게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지난주 18일에 수능시험을 마친 고3 학생들이 강릉에 바람을 쐬러 갔다가 펜션에서 일산화탄소 가스중독으로 일행 중 3명이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다. 원인은 무자격 보일러 설치업자가 시공한 배기통 이음부에서 가스가 누출되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어릴 적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람들이 죽었다는 뉴스는 겨울철만 되면 흔한 사건이었지만, 보일러 배기통 가스 누출로 인한 일산화탄소 사고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달 11일에는 태안화력발전소의 하청노동자 김용균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하청업체 직원인 김용균씨는 안전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2인 1조로 근무해야 하지만 위험한 근무환경 속에서 혼자 근무하다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였다. 태안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서부발전은 3년째 ‘무재해사업장’으로 정부인증을 받았다고 하니 이야말로 기가 막힌 일이다. 2016년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으로 10대의 청년이 사망한 사고를 기억할 것이다. 기업들이 위험한 업무들을 모두 외주화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다 보니,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은 정규직으로 고용해 직접 관리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이 발의되었다. 그러나 19세 청년의 죽음에도 지금까지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1건도 없다고 한다.
이달 4일에는 경기도 고양시 백석역 근처에서 온수관 파열사고로 인해 결혼을 앞둔 딸과 예비사위와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귀가하던 60대 남성이 화상으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지난 9월에는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왔다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20대 초반의 청년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음주운전을 가중 처벌 하는 일명 윤창호법이 통과되었다는 점이다. 사망사고를 낸 음주 운전자에게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한 윤창호법이 18일부터 발효되었지만, 법안 발효 첫날 인천에서 60대 여성이 음주운전 차량에 들이받혀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가끔 서울에 회의 참석을 위해 KTX를 타고 갈 때가 있다. 시속 300km에 내 몸을 맡기고 가는 것이 괜찮을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기차에 몸을 실을 때가 종종 있다. 며칠 전, 서울 출장을 가면서 이달 초에 발생했던 KTX 열차 탈선 사고는 내가 탄 기차와는 상관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차를 이용해 다녀왔던 기억이 있다.
세밑에 덕담과 위로를 하겠다는 필자의 글은 이달 들어 발생한 사고들의 기록으로 이어져 버리고 말았다. 억울하고 황망한 죽음들의 기록들이다. 위에 언급한 사고들로부터 우리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안전사고 불감증과 사고 공화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의 삶이다. 돈을 조금 더 아껴서 내 돈 벌려는 욕심으로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마음이, 내가 불편하고 귀찮으니 그냥 하던 대로 해도 괜찮겠지 하는 마음이, 내가 직접 관련된 일도 아닌데 누군가는 알아서 하겠지 하는 마음이 타인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극단적 이기주의와 비도덕 주의로 인해 아무런 이유 없이 타인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많은 사건ㆍ사고들을 접하면서 우리에게 저녁이 있는 삶, 작지만 확실한 행복(소확행)을 바라는 것도 욕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글프다.
“독자 여러분! 2018년 한 해 안녕하셨습니까? 2019년은 올해보다는 더 나은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