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이면 까치밥으로 남긴 과일들이 익다 못해 검붉게 빛깔을 내뿜을 계절이다. 배고프던 유년 시절, 집안의 재산 1호인 소에게 먹일 소죽거리로 호박 줄기, 고구마 줄기를 지게에 싣고 땀을 식히다 보면 가지 끝에 달린 까치밥을 보게 된다. 가끔은 감이기도 하고 더러는 횡재처럼 사과이기도 하다. 지게 작대기만큼의 높이에 있는 한 알을 따서 입에 물면 그 달콤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과즙의 당도가 꿀물처럼 달디달다.
겨울바람을 ‘단바람’이라고 요리 연구가들은 부르기도 한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채소나 과일들은 살이 단단해지고 단맛이 더 강해지는 까닭으로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독일의 유명한 와인인 ‘아이스와인’ 역시 이와 유사한 원리 속에서 탄생한 고급 와인이라는 점에서 이채롭다. 정상적 수확기보다 한참이나 늦은 시기까지 나무에 포도송이를 남겨 두었다가 서리가 내린 후에야 따서 포도주로 담는 것이 아이스와인의 특징이다. 온전히 손으로 수확하는 아이스 와인은 온도가 영하 8도 이하로 떨어지고 포도들이 자연적으로 덩굴위에 얼려 있어야 수확을 시작한다고 한다. 자연의 적절한 조건과 적은 양이 가지는 생산량의 희소성은 고가의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현재는 독일을 비롯해 오스트리아, 칠레, 캐나다 등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캐나다 관광이 유행하면서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것은 캐나다산 아이스와인이다. 이름 그대로 제조과정의 차가움 못지않게 차게 마셔야 더 진한 향과 뛰어난 맛을 느낄 수 있는 와인이다. 가까운 우리 지역의 청도 와인터널에서도 감으로 만든 아이스와인이 생산되고 있는데 수확과 그 제조과정은 찬바람이 불어오는 계절과 무관치 않다.
바다에서 자라는 생선들과 해산물 또한 예외는 아니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을 맞이하면서 산란을 염두에 둔 해산물들은 영양분을 비축하고 그로인해 단단한 육질을 형성하게 된다. 횟감으로 사용되는 방어가 그러하고 흔히 겨울철 밥상에 오르는 동태나 과메기가 그러하다. 자연이 주는 식도락의 즐거움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진리는 단순하다. 다소 늦은 듯 추위와 찬바람을 맞이한 동식물의 결실은 제철에 수확한 결실보다 더 달콤하고 깊은 맛과 질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겨울이 더 깊어지는 계절의 흐름 속에서 이맘때면 수험생들은 지난 시간들에 대한 결실을 평가하고 희비의 순간들을 맞이한다.
수시발표와 정시원서 접수 그리고 정시발표로 이어지는 학사과정 속에서 지나온 한해에 대한 후회로 절망과 회한의 눈물을 쏟기도 한다. 더구나 자기비하의 극단적 감정 속에서 삶이라는 긴 여정을 중단한 채 고정된 틀 속에 갇히는 경우도 있다. 자신에게만 다가온 불행인 것처럼 세상을 탓하며 단절의 문을 닫기도 한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닌 ‘단순히 늦어진 행운’이 분명코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마저 받아들일 여유가 없어 보인다.
인간이면 누구나 삶의 의미 그리고 욕망과 희망을 가지며 신의 축복을 기다려 온 것은 당연한 모습이 아닌가 싶다. 버킷 리스트는 죽음을 앞둔 노년기를 위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과정 속에서 이뤄가야 할 꿈의 목록들인 까닭으로 다가올 한 해와 그리고 나아갈 방향을 준비하는 역동성이 필요하다. 세상은 닫힌 것이 아니라 열려 있다. 하물며 어느 것이 진리라는 고정된 삶의 모습도 존재하지 않는다. 원하는 것들에 시간을 할애하고 노력할 때 긍정적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음은 사실이다.
까치밥으로 둔 여유로움과 오히려 늦은 수확의 결실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왔음을 배워가는 이 겨울이 되길 기대해 본다.
영어전문학원 에녹(Enoch)원장 김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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