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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이 경제활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과학적으로 연구ㆍ발전시킴에 따라 세계경제는 전례 없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경제학이 이끈 화려한 성과는 경제학의 전제조건이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귀납적으로 증명한다. 이기적인 인간에게 이상향은 유토피아다. 유토피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노 플레이스(No Place)’다. 무릉도원이든 샹그릴라든, 이상향은 현실 속에선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존재해봐야 이상향은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다. 인간은 모두 똑같이 잘 사는 그런 세상에 잘 맞지 않는 존재다. 남이 절대적으로 못 살길 원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남이 자기보다 잘 살길 원하진 않는다. 비록 모두 똑같이 잘사는 세상이 있다하더라도 거기 사는 인간이 모두 행복해할 것 같진 않다. 극락이나 천당은 착한 영혼들이 사는 곳일망정, 불완전한 인간의 본성을 감안해본다면, 인간이 살기에 좋은 곳만은 아닐 것이다.
공산주의는 모두 다 잘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이념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하는 사회를 지향하는 사상이다. 모든 재산을 공유하고, 내 것 네 것 없이 같이 나눠 쓰자는 말이다. 이는 이기심보다 이타심을 전제로 하는 이념이기 때문에 인간 본성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공산사회는 발전적 진화를 이끌어낼 유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편안하지만 발전과 친하지 않는 사회다. 아직은 좀 더 발전해야 할 때다. 차별성과 비교우위를 지향하며 성취감과 행복을 즐기는 이기적 존재에겐 공산사회는 너무 따분하고 무료하다. 능력 있는 사람과 무능한 사람이 똑같은 성과를 나누는 사회는 어쩌면 불평등하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비밀이 아니다. 냉전시대를 마감하면서 벌써 결론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동경하는 것은 우리사회에 피로가 누적된 까닭일 것이다.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크게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을 오히려 부러워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경쟁을 피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탓일 것이다. 법치주의가 흔들리고, 반칙이 횡행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모두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자고 한다. 혁신적 포용사회, 말만 조금 바꾸었을 뿐 속내는 이상향을 만들자는 뜻인 것 같다. 비인간적인 갑질과 불공정한 게임에 질린 사람들을 쉽게 유혹할 수 있는 잠재력은 있다. 치열한 무한경쟁에 찌들어 피곤해하는 사람들에게 사이다 같은 청량감을 주기도 한다. 경쟁에 밀린 사람들과 각종 부조리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공산주의에 솔깃해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불완전한 인간이 충분히 빠질 수 있는 함정이다. 그렇다고 갈 수 없는 이상향을 제시하면서 그곳으로 가자고 인도하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선진사회가 수백 년 동안 검증해온 결과를 무시하고 잘못된 길로 이끄는 것은 역사와 국민에 대한 반동이자 배신이다.
현재의 문제는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방법론이 잘못된 데서 유래한다. 고질적인 폐단을 혁신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할 안전판을 꼼꼼히 챙기는 처방이 현실적인 체제 내에서 나와야 한다. 해법은 디테일에 있다. 법치를 바로 세우고 반칙을 응징해야 한다.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장치가 필요하다. 나는 돈 버는 일엔 비교적 젬병이다. 자본주의의 낙오자로서 사회안전망 밖에서 구조신호를 보내야 할 사람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부를 똑같이 나눈다면 아마 이득이 될 확률이 더 클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공산주의가 싫다. 이기심 많은 인간이 선택해야할 체제는 공산주의 계획경제체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체제라고 믿기 때문이다.
오철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