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혼외자식’ 이야기에 속아 보이스피싱 당한 윤장현 전 시장 사법 판결 떠나 국민들

“노무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윤장현 전 광주시장이 돈 떼이고 바보 되고 또 검찰 수사까지 받게 된 사연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정치인 노무현이 죽어서 살려낸 것이 노무현 정신이고 추종 정치세력이었다. 그 연장선에서 촛불세력의 힘으로 문재인 정권이 태어났다. 그 노무현에게 혼외자식이 있었다니, 그것도 아들딸 둘이나 말이다. 윤 전 시장은 “노 전 대통령 혼외자 이야기를 듣는 순간 부들부들 떨렸다”라며 “온몸이 얼어붙었다. 노무현 혼외자 말을 듣는 순간 소설처럼 내 머리에 뭔가가 꽂힌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나라가 뒤집힐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라고 당시의 심정을 털어놨다.
일부일처제의 자유 민주 대한민국에서 뚱딴지같은 소리로 들리겠지만 혼외자 이야기는 유명인사가 치르는 유명세 같은 것이기도 하다. 대부분 묻혀 지나갔지만 더러 곤욕을 치르기도 했으니 가까이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박근혜 정권에서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을 수사하던 당시 채 검찰총장에게 느닷없는 혼외자 소문이 나돈다. 소문이 사실로 굳어지면서 본인이 소동에 휘말리고 그가 의욕을 갖고 추진하던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은 후순위로 밀린다. 그리고 그가 중도하차하면서 정치적으로는 공안정국으로 후퇴하는 역사적 퇴행의 시간을 맞는다. 혼외자에 대한 정치적 도의적 사회적 파장은 개인에게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그렇게 엄청났다.
혼외자, 첩의 자식이 그것이다. 정신적으로 그 낙형은 지워지지 않고 의식 속에 박혀 있는 것이다. 궁중 부엌데기 무수리의 아들로 태어난 조선 영조 임금은 평생을 그 콤플렉스로 괴로워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국의 왕이면서도 그런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듯하다.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굶겨 죽이면서도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려 했던 것은 사실 연잉군이었던 그의 출생 신분에서 오는 콤플렉스를 감추려는 자기방어 기제의 발동이었을 것이다.
1948년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되고 첩 제도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우리 사회에 첩이 합법적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뿌리가 뽑히지 않고 남아 있는 것도 현실이다. 법으로는 서얼제도가 사라졌지만 의식 속에서는 여전히 남아있다고 할까.
첩이 합법적이었던 시대, 본부인 이외의 첩의 자식은 모두 서얼이 되었다. 양민 첩의 자식과 천민 첩의 자식의 구분이 서얼의 구분이었지만. 문제는 이 서얼이 대를 이어가는 무서운 것이었다. 어머니가 정실이어도 아버지가 서자였다면 자신도 서얼이 되었던 것이다. 할머니가 측실이면 자손도 서얼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서얼의 수가 늘어날 수밖에. 장례와 제사 같은 가정의례에서 이 서얼의 위치는 더욱 분명히 드러나게 됐고 집안의 불화를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애정 문제가 지금도 가족이라는 사회 기본조직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윤리와 도덕을 숭상했던 우리 선조들이 첩을 법으로 허용한 데 의문이 생긴다. 많은 사연이 있겠지만 그렇게 신분제가 철저히 지배하는 사회에서 왜 그 자식들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에서다.
저출산과 인구 절벽이 국가적 현안이 된 우리 사회에서도 논란이야 있지만 혼인 관계로 이루어지는 가족만이 정상적인 가족이라고 주장할 수만은 없는 세상이 됐다. 그런 이야기와는 별개로 유명인의 혼외자는 여전히 뉴스거리임에 틀림없다.
노 전 대통령의 혼외자 문제가 사실이라면 윤 전 시장의 걱정처럼 추종 세력들에게는 충격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는 나라가 그렇게 허술하지도, 그 국민이 어리숙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걱정을 안겨준 여성이 구속되면서 그가 왜 사기꾼에게 속았는지 더욱 궁금해졌다. 또 다른 의혹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의심만 천하에 폭로됐다. 아무리 충격을 받아 ‘한순간에 훅 갔다’고 하더라도 4억5천만 원은 너무 큰돈이라는 생각에서다. 본인이야 선거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발뺌하지만 사법 당국의 판결을 떠나 국민들은 그 배경을 궁금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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