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포트폴리오 농법 실천하는 예천 ‘솔꿈농장’


‘금융 포트폴리오 이론’ 정립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토빈은 ‘포트폴리오 이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아서는 안 된다. 바구니를 떨어뜨리면 모든 것이 끝장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때부터 ‘포트폴리오’는 주식을 비롯한 금융투자의 정석으로 받아들여졌다. 안전성ㆍ수익성ㆍ유동성의 세 특성을 모두 갖추었기 때문이다.
농업에 포트폴리오를 실천하는 강소농이 있다. 예천군 지보면에서 ‘솔꿈농장’을 운영하는 김현숙(52)ㆍ윤승원(55)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부부는 4만3천㎡의 농지에 쌀농사는 물론, 콩, 단호박, 참깨, 쪽파 등 20가지 이상의 작물을 재배한다.
논과 밭의 구분도 안 한다. 지난해 논이었던 것이 올해는 밭이 된다. 재배하는 작물도 해마다 다르다. 단일 작목 재배에 따른 위험을 분산하기 위한 ‘포트폴리오 농법’이다.
힘이 많이 들지만, 소득의 연속성이 보장되는 장점이 있어 연간 7천여만 원의 소득을 올리는 알짜배기 강소농이다.

◆일만 시간의 법칙

2017년 강소농인 김현숙 대표는 25년 전 결혼을 하면서 예천으로 왔다. 결혼 직전까지 구미에서 직장생활을 해 농업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정미소’를 보고도 무엇을 하는 건물인지 몰랐다. 결혼 초 시어머니가 밭에서 땅콩을 캐오자 “어머님 왜 흙 묻은 땅콩을 사 오셨어요?”하고 질문할 정도였다.
윤승원 대표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부모님의 병간호를 위해 고향으로 내려왔다가 농촌 생활에 정착했다. 처음엔 ‘곧 서울로 돌아가리라’는 생각이었지만, 결국 농부가 됐다.
이들 ‘농맹 부부’는 그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은 ‘농사 전문가’란 소리를 듣는다.
이들 부부는 ‘일만 시간의 법칙’을 농업에 그대로 적용했다. 30년 동안 농사일을 하고, 농업에 대한 수많은 교육을 받았다.
“일만 시간을 농업에 투자하자”며 다짐했던 것이, 어느새 ‘10만 시간’이 훌쩍 넘어버렸다.

◆농사의 기본은 토양

‘모든 농사의 기본은 토양’이라는 것이 ‘솔꿈농장’의 영농 철학이다. 땅에서 나오는 것은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나머지는 반드시 땅으로 되돌려 준다는 원칙을 실천하고 있다. 벼를 재배할 때, 쌀은 농부가 거두지만 볏짚은 땅에 돌려주어야 한다는 단순한 원리다.
솔꿈농장은 올해 1만6천500㎡의 벼농사를 지었다. 콤바인으로 벼베기를 하면서 볏짚은 잘게 썰어 모두 논에 뿌렸다. 20년 넘게 지켜 온 영농 원칙이다.
콩과 고구마, 참깨 같은 밭작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솔꿈농장의 논에는 ‘볏짚 베일’(가축의 조사료로 이용하기 위해 만든 압축된 원통형 볏짚 꾸러미)이 없다.
매년 벼와 밭작물을 교차해서 재배한다. 덕분에 연작 피해가 없다. 퇴비도 완전히 발효된 퇴비만을 사용한다.
이뿐 아니다. 모든 밭은 수확이 끝나면, 즉시 뿌리 덮개용 비닐을 제거하고 퇴비를 뿌린다. 바로 땅을 갈아엎어 땅이 숨을 쉬게 해준다. 이를 두고 김 대표는 “땅에 휴식을 준다”고 설명한다.
‘땅이 좋아야 좋은 농산물이 나온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항을 실천하는 것이다.

◆ 농업백화점

‘솔꿈농장’은 농업백화점이다. 대부분의 농가가 과수나 채소, 축산 등 단일작목인 전문점이라면, 솔꿈농장은 그 반대다.
벼와 콩을 비롯해 20가지 이상의 작목을 재배한다. 노동력의 분배와 농산물 가격의 등락에 대비한 안전조치다.
단일 작목을 전문적으로 재배하면, 관리와 기술력 축적 면에서 좋은 점이 많다. 그러나 농번기에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노동력을 구하기 어렵고, 가격의 등락이 심해 소득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특히 단일 작목 영농만 고집하다가 한 해라도 농사를 망치거나 가격이 폭락하면, 그 후유증이 몇 년 동안 지속된다.
특히 아들이 셋이다 보니 학비 등 지출이 연중 꾸준하게 이어지는데, 소득의 안정성이 없으면 곤란하다. 그래서 다품종 재배로 전환했다. 대부분 자가 노동력으로 해결한다.
그러다 보니 인건비 지출이 적고, 한 작목이 실패해도 큰 타격을 받지 않는다. 다른 작목이 대체해 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소비자들의 연계 구매로 이어지는 것이 좋은 점이 있다. ‘다양한 농산물을 재배하는 백화점 농장’이라는 소문이 이젠 널리 퍼졌다. 인터넷 주문으로 농산물을 구매한 고객들은 “또 다른 농산물이 있느냐?”고 물어보고 한꺼번에 여러 가지 농산물을 주문한다.
쌀을 사면서 콩도 사고, 참깨도 함께 산다. 물론 품질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김 대표는 “농사짓는 데 힘은 많이 들지만, 수확해 놓으면 고객들에게 다양한 농산물을 제공할 수 있어서 좋은 점이 더 많다”고 자랑한다.

◆ 500여 명의 단골고객

농산물은 대부분 직거래를 통해 판매한다. 품질이 좋고 종류가 다양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고객들이 계속 늘고 있다. SNS를 통해 농장의 소소한 일상과 영농일지를 소개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매년 농산물을 구입하는 단골이 500여 명에 이른다. 대부분이 콩과 참깨, 고구마 등 1차 농산물이다.
지난봄에는 비트를 판매하고 나서, 어느 고객으로부터 “물러진 비트가 3개 정도 들어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정말 죄송하다”며 수차례 사과하고 “재발송을 해드리겠다”고 하자, “괜찮다”며 전화를 끊었다. ‘좋은 고객 한 사람을 놓쳤구나’ 생각했다.
며칠 뒤 택배로 큼지막한 ‘어묵 선물세트’가 도착했다. 선물을 보낸 주인공은 며칠 전 ‘비트 품질 문제’로 통화했던 고객이었다.
고객은 “농사일이 힘들텐데 어묵 드시고 힘내라”면서 도리어 선물을 보내왔다. 선물상자를 받아 든 김현숙 대표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그 특별한 손님은 “비트 맛이 좋았다”며 친척에게 선물할 것까지 추가로 구매신청을 했다. 그날 저녁 부부는 “아직도 세상은 살만하며, 정말 이런 맛에 농사를 짓는구나”하면서 감사했다.

◆하우스 안에 키우는 참깨

솔꿈농장의 참깨는 조금 특별하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재배한다. 고온성 작물로 습기가 많은 곳을 싫어하는 참깨의 특성도 있지만, 연작피해를 줄이기 위해 쪽파와 돌려짓기를 한다.
참깨를 5월에 파종해서 8월에 수확하면, 9월에 쪽파를 심어 다음 해 4월에 수확한다. 하우스 안이라 기후변동이 적어서 잘 자란다. 무엇보다 수확기에 비를 맞지 않고 건조도 하우스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품질이 우수하다.
참깨는 수확기나 건조과정에 비를 맞으면 품질이 많이 떨어진다. 그래서인지 참깨 수확 철이 되면 단골들이 미리 주문을 하고 기다린다. 참깨 후작으로 심는 쪽파는 종자용을 판매한다. 올해부터는 생쪽파 판매도 할 계획이다.

◆고객을 위한 ‘쉼터’ 조성

올해부터 부부는 ‘농장 쉼터’를 만들어 가고 있다. 농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고객을 위한 쉼터다. 근래에 들어 농장 구경을 시켜 달라는 고객들이 늘어남에 따라, 농장에 쉼터를 만들어 도시 고객들이 언제든지 와서 쉴 수 있는 힐링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농장 주변의 농로와 논밭 두렁에는 꽃을 심어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 볼거리를 제공하려고 한다. 농장 인근에 있는 선산(先山, 조상의 무덤이 있는 산)에는 산책할 할 수 있는 올레길을 만들었다.
경관 농업을 통해 깨끗하고 아름다운 농장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어 농산물의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다. 고객들을 초청하는 팜파티도 준비 중이다.
농부와 고객이 함께 누리는 ‘소확행’이 솔꿈농장의 목표다.
▲농장명: 솔꿈농장
▲농장주: 김현숙ㆍ윤승원 (2017강소농)
▲구입문의: 010-9363-1020, 010-9362-2061
▲홈페이지 : www.solggum.com
▲소재지: 예천군 지보면 신풍1리길 57
▲이메일: solggum@naver.com
글ㆍ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팜라이터 ilsok@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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